[[오마이뉴스 최영수 기자]

▲ 2007년 2월부터 도입된 서울시의 택시요금 카드결제제도. 하지만 이용자들의 사용 성공률과 만족도는 그리 크지 않았다. ⓒ 최영락

서울 시내에서 택시요금을 카드로 결제할 수 있다? 그럴 수 있다. 단, 당신은 쉽지 않은 두 개의 고개를 넘어야 한다.

첫째 고개

카드 결제가 가능한 택시를 골라서 타야 한다. 전체 택시의 약 35%. 둘째 고개

흔쾌히 카드를 받아주는 친절한 택시기사를 만나야 한다. 그런 택시기사를 만나면 당신은 행운아! 서울시가 2007년 2월 26일부터 도입한 택시요금의 카드 결제가 시행 1년여가 지났지만 여전히 승객들에게 만족을 주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서강대학교 학생 32명이 카드결제가 가능한 택시에서 신용카드와 티머니(T-money)로 결제를 시도한 결과, 택시기사가 흔쾌히 결제를 처리해 준 경우는 절반에 훨씬 못 미치는 12명(37%)에 불과했다.

나머지 20명의 학생들 중 9명은 택시기사가 마지못해 결제는 해줬으나 그 과정에서 불쾌감을 느꼈고, 11명의 학생들은 아예 카드결제에 실패한 것으로 조사됐다. 카드결제 실패 유형은 '택시기사의 거부' 4명, '카드결재 기기 고장' 4명, '작동 준비 미비' 등 3명이었다.

서강대 신문방송학과의 < 온라인저널리즘 > 을 수강하는 이들 대학생들은 3월 15일부터 30일까지 보름간 서울 시내에서 택시요금 카드결제를 각자 실험해 본 결과 이같은 결과를 얻었다. 아래는 이들의 실험 결과를 사례별로 정리한 것이다.

택시기사의 핀잔 "다음부터는 꼭 현금 갖고 다녀!"

▲ 많은 신용카드를 사용할 수 있다고 안내되어 있지만 운전기사의 결제 거부와 잦은 기기 고장 등으로 쉽지 않았다. ⓒ 최영락

☞ 강은정

현금을 바라는 택시기사와의 신경전 끝에 카드로 결제를 하긴 했지만 그 과정에서 핀잔을 들음.

"아저씨, 여기 티머니 카드로 택시 요금 계산되죠?" "되긴 되는데… 이거 기기가 잘 말을 안들어서. 그냥 현금으로 내는 편이 좋을텐데…." "카드결제 되긴 되는 거죠?" "이게 좀 기기가 이상해서 말이야. 그냥 현금으로 내지?" "아저씨 저 진짜 지금 현금이 없어서 그러는데." "학생, 이번만이야. 다음부터는 꼭 현금 가지고 다녀." ☞ 김유라

교통카드로 결제를 하려고 했더니 택시기사 아저씨가 한눈에 봐도 티 나게 얼굴이 확 일그러졌고 짜증을 냄. 카드를 찍고 나서 "죄송하다"는 말을 건넸는데도 인사를 받아주지도 않았음.

☞ 송승원

택시 요금 2500원을 카드로 결제하려다 택시 기사로부터 "카드로 하려면 돈을 더 내야 한다"는 어처구니 없는 말을 들음.

"신용카드를 내밀어도 택시기사는 받을 생각도 하지 않고 계속 이렇게 말했어요. '학생, 현금은 없나? 2500원을 카드로 받기가 곤란해서 말이야.' 그 분은 애물단지라도 되는 양 카드 계산기를 가리키며 '가뜩이나 먹고 살기 힘든데…. 카드 결제를 하려면 미리 말했어야지'라고 말하더군요. 심지어는 '원래 카드로 계산하면 돈을 더 받는다'며 으름장을 놓았어요." ☞ 이덕만

"오늘은 고장"이라는 택시기사의 말에 현금을 내고 내림.
"교통카드로 결제되죠?" "오늘은 기계에 장애가 있어서 작동이 안돼요." "그럼 그 전에는 작동됐어요?" "그동안은 잘 됐는데, 이게 오늘만 안되네." ☞ 김은순

택시기사가 고의로(?) 요금 표시기를 꺼버리는 바람에 카드결제를 하지 못하는 '황당한 경험'을 함.

"내가 카드를 꺼내고 있는 사이 택시는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했는데, 어디선가 삑하는 소리! 아저씨가 택시요금표시기를 꺼버리신 거예요. 조금은 놀랐지만 난 아무것도 모르고 카드를 내밀었지요. 아저씨는 '이거 꺼버렸으니 카드를 긁어도 입력이 안 된다'고 했어요. 아저씨는 나에게 다시 확인을 해주듯이 카드를 입력기에 몇 번이나 굵어대지만, 요금 표시기가 꺼져 버려서 할 수 없다는 것이었어요. 나는 황당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어요." ☞ 장현준

카드로 결제하려다가 아예 승차거부 당함.
"겉면에 카드결제 표시가 달린 택시를 세우고 티머니 결제가 가능한지 물었습니다. 그러나 2대 연속으로 '다른 차를 이용하세요' '리더기가 고장났다'는 는 소리만 듣고 승차 거부당했어요." 이런 사례들은 최근 서울시가 카드단말기 장착을 의무화한 '브랜드 콜택시'를 도입하고, 택시기사를 대상으로 교육을 강화하고 있지만 택시요금 카드결제가 아직 문화로 정착하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실험에 참여한 32명의 학생 중 12명은 흔쾌히 카드를 결제해 주는 친절한 택시기사를 만나는 '행운'을 누렸다. 이대웅씨는 "카드를 내밀면서 내심 걱정했는데 택시기사가 '이렇게 카드로 결제하면 손님들도 훨씬 편하지요, 그러면 손님들도 점차 많아질 테고'라면서 친절하게 결제해줬다"고 말했다.

마음은 급한데... 저 차, 카드택시 맞어?

2008년 3월 현재, 서울시에 등록되어 있는 약 7만5000대의 택시 중 3분의 1 정도인 2만5000대(약35%)가 카드 단말기를 장착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승객이 카드결제가 가능한 택시를 쉽게 구별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이번 실험에 참여한 이혜원씨는 "신촌 현대백화점 앞에서 카드택시를 잡아타려는데 식별의 어려움 때문에 20분이나 걸렸다"고 말했다.

기본적으로 카드 단말기를 장착하면 택시의 전면 유리창 조수석 하단과 후면 유리창 하단 혹은 측면에 스티커를 부착한다. 여기에, 요즘에는 멀리서 식별할 수 있도록 택시 조수석 상부에 화살표 모양의 '카드결제' 표식을 부착하고 있다. 그러나 크기가 충분하지 않다.

일반 택시회사(법인택시)나 개인택시들은 여기에 그치지만, 이른바 브랜드 택시들은 자체적으로 택시 측면과 상부 외등에 각각 회사의 브랜드를 새겨 넣어 카드 단말기 미부착 차량과 구별을 하고 있다.

브랜드 택시는 2007년 12월 서울시가 새로운 택시 문화를 정착하기 위해 출범시킨 것으로 현재 SK 에너지의 나비콜, 동부 익스프레스의 엔콜·친절콜 그리고 KT 로지스의 S택시 등 4개의 브랜드 택시가 운행 중이다. 콜문화 정착이 주요 목표였던 브랜드 택시에 카드 단말기 장착을 의무화하면서 현재 모든 브랜드 택시에서는 카드 결제가 가능하다.

어쨌든 시속 40~60㎞로 달려오는 택시를 보면서, 브랜드마다 제각각인 카드결제 표시를 확인하는 것은 그리 쉽지 않다. 이대웅씨는 "카드결제 택시를 잡는 것이 쉽지 않아 동생과 함께 2인1조로 뛰어야 했다"면서 "승객들이 보다 쉽게 구별할 수 있도록 명확하고 통일된 식별 표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카드결제가 싫은 택시기사들, 이유 있었네!

▲ 결제 수수료와 잦은 기기 고장으로 택시기사들은 카드를 꺼내드는 승객이 달갑지만은 않다. ⓒ 최영락

택시기사들이 카드결제를 꺼리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결제 수수료다. 카드 결제 1건당 전체요금의 2.4%가 수수료인데, 이 부담을 승객이 아닌 택시사업자가 지기 때문이다.

결제 수수료 가운데 1.5%는 카드회사 몫이고, 0.9%는 카드결제를 중계하고 단말기를 설치하는 역할을 맡은 한국스마트카드사에 돌아간다. 그러나 카드회사나 한국스마트카드 모두 "수익이 되지 않는다"고 한목소리다. 카드회사 가운데 국민은행·시티은행 카드는 아직 참여하고 있지 않다.

택시기사들이 카드결제를 꺼리는 또 다른 주요 이유는 '잦은 기기 고장'.
한국 스마트카드 관계자는 "택시기사들이 기기 조작에 익숙하지 않은 경우가 있어 하루 평균 100건 정도의 문의가 들어온다"면서 "그 중 실제 기기고장은 하루에 2~3건 정도"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택시기사들이 카드결제를 달가워하지 않은 이유로 "낙전수입이 없어지고, 택시가 세원 노출을 꺼리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박영주 서울시 운송물류과 담당관은 "장기적으로 본다면 카드사용 도입으로 전체적 택시이용률의 증가와 더불어 수입의 증가도 가져올 것"이라며 "아직 과도기 과정이며 택시 기사들의 인식도 나아지고 있는 편"이라고 말했다.

서울시는 택시가 카드결제 단말기 설치를 원하면 한 대당 15만원을 지원하고 있다. 카드결제 운영을 담당하고 있는 한국스마트카드사도 서울시가 대주주다. 결국 서울시민의 세금으로 택시요금 카드결제 문화가 시도되고 있는 것이다.

왜 돈 내면서 미안해야 해?

하지만 실험에 참여한 서강대 신방과 학생들 중 다수는 '손님' 대우를 제대로 받지 못했다. 강인한씨는 "카드결제하기까지 1분간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무뚝뚝하고 불친절한 택시기사 때문에 식은땀이 흘렀다"고 했다.

또 이은령씨는 "우여곡절 끝에 카드결제를 마치고 택시기사에게 방긋 웃으며 '감사합니다, 아저씨'하면서 앞좌석까지 얼굴을 들이밀고 인사했지만 고개 한번 돌려주지 않고, 말대꾸 한 마디 없었다"고 했다.

김은순씨는 "5000원 이하는 카드결제가 안 된다는 택시기사의 말에 오히려 내가 주눅이 들었다"면서 "이런 수준의 카드결제 문화라면 승객과 택시기사가 언제나 신경전을 벌여야 하고 스트레스를 받아야 하는데 서울시와 관련자들이 하루빨리 개선책을 내놓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