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왕따 택시기사’의 자살사건 전말

[2008·04·01 일요신문]

경기도에서 택시기사를 하던 50대의 남성이 자신의 방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 남성은 “동료들의 따돌림과 회사 측의 불합리한 처사 등으로 택시영업을 제대로 할 수 없었다”라는 내용의 유서를 남기고 자살했다. 숨을 거두기 전까지 만 4년간 일해 온 택시회사에서 이 남성이 받은 급여는 한 달에 30~40여만원. 그럼에도 곧 개인택시를 받을 거라는 희망으로 일했던 이 남성은 결국 가족들을 뒤로 한 채 자살을 택한 것. 그러나 회사 측은 그의 자살과 회사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어 갈등이 커지고 있다. 사건의 전말을 취재했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 “인간이 싫어서…”

“인간들이 싫다.”

함께 일하는 동료들이 싫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하던 유모(54)씨는 3월6일 자신이 잠을 자던 방 천장에 줄을 매고 목을 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 날 아침 유씨는 출근하던 부인 이모(50)씨에게 전화를 걸어 “잘 갔다 와”란 마지막 인사를 한 뒤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큰 돈을 벌어와 남부럽지 않게 살지는 못했지만 가족들과 함께 단란한 가정을 꾸리던 유씨가 이처럼 극단적인 선택을 한 이유는 무엇일까.

유씨의 직업은 택시기사였다. 그는 경기도 화성시에 있는 K업체에서 지난 2003년부터 약 4년 동안 일했다. 수원에 있는 한 택시회사에서 1백만원 이상의 월수입을 올리며 일하던 그가 화성으로 옮긴 이유는 화성이 개인택시를 받기가 수월하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주위에서 “수원은 경쟁이 치열해 개인택시를 받으려면 오래 기다려야 하니 화성에서 택시기사를 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말을 유씨에게 한데다가 마침 집도 화성과 가까운 터라 결정하기가 쉬웠던 것.

처음에는 여러 가지 상황들에 만족했던 유씨였다. 유씨의 부인 이씨는 “처음 화성에서 일을 시작했을 때는 남편이 ‘고향에서 일하니 마음이 편하다’며 옮긴 것에 불만이 없었다”고 말했다. 고정기사가 아닌 예비기사로 입사했지만 곧 고정기사가 될 거라는 생각에 별 문제를 삼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남편의 얼굴에는 날이 갈수록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한숨을 쉬는 일도, 술과 담배도 늘어만 갔다. “인간들이 싫다”는 자조 섞인 말도 이따금씩 내뱉었다.

회사동료들과의 다툼도 잦아졌다고 한다. 이유는 손님들이 ‘콜’을 부르면 순번대로 영업을 해야 하는데 순번을 지키지 않고 서로 한번이라도 더 나가려고 해 질서가 지켜지지 않았던 탓이다. 이에 기사들 간 갈등이 심화돼 새로운 팀장이 영입되기도 했다.

그러나 사정은 그리 나아지지 않았다고 한다. 차량의 정, 배차나 콜과 관련된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고 객관적인 자료나 수치가 아닌 개인적인 감정과 인맥 등으로 기사들을 평가해 고정배차 자리를 내줬다는 것이 이씨의 주장이다.

이 같은 까닭으로 유씨는 곧 될 것 같았던 고정기사 자리도 입사 4년이 되는 해에서야 겨우 얻을 수 있었다. 고정기사가 될 몇 번의 기회가 있었지만 그는 번번이 다른 기사에게 밀려야 했고 2007년 8월에서야 가까스로 고정기사가 됐던 것. 이마저도 유씨의 강력한 항의가 없었다면 이뤄지지 못했을지도 모른다고 한다.

그러나 이씨는 이 같은 상황들을 애써 들춰내지 않았다고 한다. 개인택시를 받을 날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회사를 관두겠다고 할까봐 걱정이 됐던 것. 개인택시를 따는 것은 유씨에게 남은 마지막 목표였고 감정으로 일을 그르치게 될까 우려감이 앞섰던 이씨였다.

그러는 동안 수입도 차츰 줄어만 갔다. 24시간 격일제 근무를 하면서 하루 사납금 13만원을 입금시키고 남은 초과수입금이 총 수입인데 한 달 수입이 30~40만원에 그치기 일쑤였다.

한 가정을 꾸리기에는 턱없이 모자란 월급이었지만 작은 회사에 다니는 아내, 간호조무사로 일하는 딸이 십시일반 생활비를 보태 근근히 생활해 나갔다.

그러나 유씨는 점점 회사생활을 힘들어했다. “수입이 왜 이렇게 적냐”는 이씨의 말에 유씨는 “나에게는 ‘콜’을 안 줘”라는 말을 흘리기도 했다.

유씨는 교육을 받고 오는 날이면 풀이 죽어 얼굴이 더욱 어두웠다고 한다. 이유를 묻는 이씨에게 남편은 “동료들에게 따돌림을 받고 모욕감 같은 걸 받는다”는 푸념을 하기도 했단다.

이씨는 남편의 이 같은 말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고 한다. 이씨는 “평소 늘 반듯하고 남에게 실수하지 않고 남에게 싫은 소리 한마디하지 못하는 남편이 왜 동료들과 어울리지 못할까”라는 생각을 자주 해왔다고 한다.

그러다 어느 날부턴가 유씨는 교육에 불참하기도 했다. 유씨는 “교육에 가면 술이나 먹고 노름이나 하면서 왜 왔냐고 비아냥거릴 텐데 뭐 하러 가”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

또 유씨는 2006년 경부터 자신의 근무지였던 매송 지역이 아닌 봉담과 동탄 등 타 지역으로 영업을 다니기도 했다.

이처럼 동료들과의 트러블과 회사의 비합리적인 처사에 염증을 느끼던 유씨는 날이 갈수록 짜증이 늘어갔다고 한다. 이씨와 가족들은 그 모습이 안타까웠지만 지켜보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지난 3월6일, 일을 마치고 새벽에 들어온 유씨는 종이에 무엇인가를 열심히 썼다고 한다. 이 모습을 본 이씨는 “뭘 하느냐”고 물었고 유씨는 이에 “회사일이다. 피곤할 테니 얼른 자라”라고 말했다고 한다.

화성에서 택시운전하던 50대 남성 안방에서 목숨 끊어

월수입 30~40만원에도 개인택시 받을 희망으로 버텨

그리고 그날 아침, 이씨와 딸이 회사에 가고 난 뒤 유씨는 자신의 방 천장에 달린 줄에 목을 매고 목숨을 끊었다. 유씨가 숨진 시각은 그날 오전 9시에서 오후 1시 사이로 추정되고 있다. 숨진 유씨를 발견한 것은 유씨 형의 처였다.

갑작스런 가장의 죽음에 큰 충격을 받은 가족들은 남편이, 그리고 아버지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유도 알지 못한 채 원망 속에서 장례를 치렀다. 이씨는 “아직 결혼도 시키지 않은 자식이 둘이나 있는데 무책임한 선택을 한 남편이 원망스러웠다”고 말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 멍하니 앉아있던 이씨는 남편이 죽기 전날 가족사진을 벽에서 떼 만지던 기억이 났고 무심코 가족사진을 가져와 뒤판을 뗐다가 남편이 남긴 유서를 발견했다.

그 유서에는 그동안 유씨 자신이 회사에서 겪었던 수모와 변칙적인 회사 운영방법 등이 낱낱이 적혀있었다.

“수원에서 화성으로 옮긴 것을 후회한다”는 말로 시작된 몇 장의 유서에는 교육을 몇 번 빠졌다는 이유로 자신의 근무지인 매송이 아닌 타 지역으로 영업을 보낸 것, 자신이 회사에서 동료와 팀장 등에게 받은 수모 등이 나열돼 있었다.

또 고정기사가 될 기회가 5번 있었는데도 번번이 자신이 뒤로 밀려난 일들과 동료들의 행각을 열거하기도 했다. 이 유서를 본 유가족들은 가족을 잃은 슬픔만큼이나 큰 충격을 받았다. 이씨는 “가진 것은 없지만 남에게 피해주지 않고 힘겹게 자식들과 살아온 남편인데 오죽했으면 가족들을 남기고 죽었겠나”라며 울분을 삼켰다. 유서를 본 이씨는 남편과 함께 일했던 동료들을 만나 이 같은 내용을 전했다. 그러나 동료들의 대답은 하나였다. 유씨를 따돌리거나 불합리한 조치를 한 적이 없다는 말이었다.

이 같은 반응에 이씨는 마지막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노동조합 위원장에게 면담을 신청했다. 그러자 위원장은 회사 관계자 다섯 명과 함께 이씨의 집을 찾아 “회사 측은 남편의 자살과 아무런 관계도 없고 책임도 없으니 도와줄 수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들은 “하고 싶은 대로 해봐라”란 말을 남긴 채 집을 떠났다고 한다. 이씨는 “아무리 죽은 사람은 말이 없다지만 함께 일했던 직원의 죽음에 그토록 차갑게 대응하는 것을 보고 혀를 내둘렀다”고 토로했다.

회사 측은 여전히 이씨의 죽음과 회사는 관계가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 같은 유씨와 유가족들의 일을 알게 된 시민단체는 진상규명과 피해보상을 요구하고 있다. 인권운동단체인 다산인권센터는 유씨의 죽음에 대해 “택시업계의 사납금 제도 등 불합리한 관행이 만든 사회적 타살”이라고 못 박고 있다.

이들은 “택시노동자들의 임금이 정당하게 보장되지 않는 현 상황과 개인적 친분관계에 의해 배차가 이뤄지는 성황에서 배차를 제대로 받지 못한 노동자들은 저임금과 장시간의 노동에 시달리며 ‘개인택시’라는 희망 하나에만 매달릴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 희망이 월 30~40만원의 저임금에도 어떤 불평이 없도록 택시 노동자를 내몰고 있다고 성토하고 있다.

다산인권센터의 한 관계자는 “유씨가 1년만 더 견디면 개인택시를 받는데도 불구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은 회사와 간부들에게 밉보인 자신에게 개인택시가 돌아오지 못할 거라는 절망이 한 몫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이 관계자는 “사납금제도 등 구조적인 모순과 함께 집단생활에서 외톨이로 지내야 했던 고통까지 더해져 결국 유씨가 목숨을 끊은 것 같아 안타깝다”고 덧붙였다.

이에 다산인권센터는 고인의 죽음에 대한 회사 측의 진상규명 노력과 관련자 징계, 그리고 고인을 죽음에 이르게 한 사태에 대한 정당한 보상을 유가족에게 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더 나아가 이들은 정부에 택시노동자들의 노동권이 침해되는 문제를 방치하지 말고 사납금 제도 등 불합리한 관행을 근절할 수 있는 제도마련에 나설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씨는 “할 줄 아는 것이 운전밖에 없어 택시운전을 한 남편이 이렇게 허망하게 목숨을 끊을 줄 알았다면 ‘산 입에 거미줄 치겠느냐’며 그만 두라고 했을 것”이라며 “억울하게 죽은 남편의 한을 꼭 풀어 줄 것”이라고 다짐했다. 불합리한 관행과 잘못된 조직문화가 만든 가장의 자살은 많은 문제점을 드러낸 채 진실규명을 촉구하고 있다.

김봄내 기자/kbn@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