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성폭력 범죄를 예방법들이 잇달아 추진되고 있다. 지난달 29일 ‘화학적 거세법’이 국회를 통과한 데 이어, 30일에는 국토해양부가 성폭력 범죄자의 택시 영업을 제한하는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 개정안'이 입법 예고됐다.

화학적 거세법은 성범죄자에게 성욕을 감퇴시키기 위해 여성호르몬을 투입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다. 운수사업법 개정안은 성범죄자의 경우 평생 택시 영업을 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이런 성폭력 대책 입법화는 말할 나위 없이 최근 아동 성폭력 문제가 잇달아 발생해 사회적 파문을 불러일으킨 데 따른 것이다.

사사건건 충돌하고 있는 여야도 이 문제에 관한 한 한목소리다. 화학적 거세법은 지난 29일 국회 본회의에서 찬성 137표, 반대 13표(기권 30표)라는 압도적인 표차로 가결됐다.

이러한 법제화에 대해 찬성하는 쪽은 아동 성폭행 피해가 엄청난 정신적·육체적 후유증을 남기는 데다 재범률이 높은 범죄 특성상 강력한 처벌과 함께 강도 높은 예방대책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한 편에서는 잇단 아동 성폭행 사건으로 인한 사회적 충격 여파가 채 가시지 않은 상태에서 성폭행 범죄자에 대한 대중적 증오감에 편승해 이들 법제화가 너무 졸속으로 추진돼 부작용과 함께 인권 침해 우려가 적지 않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 범죄자를 '선한 인간'으로 개조할 수 있을까?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시계태엽 오렌지>(앤서니 버지스 원작)에는 이를 위해 국가가 '약물 치료'를 동원하는 내용이 담겼다. ⓒ씨네21 이미지

박민식 한나라당 의원과 함께 화학적 거세법을 공동 발의한 조배숙 민주당 의원은 "범죄 예방 차원에서 불가피한 조치"라며 “범죄자와 피해자 인권 가운데 무엇을 우선할 것인가 하는 문제로 범죄자의 인권을 아예 무시하자는 것은 아니지만 피해자들의 인권 보호 차원에서 사회적 위험을 막는 게 더 중요하다고 보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 법이 성범죄를 예방하는 본질적 처방이 될 수 없다고 지적한다. 민변 소속 차혜련 변호사는 "성범죄를 막는 사회적 시스템이나 예방 프로그램과 결합할 때 효과가 있을 것"이라며 "약물 투여만으론 실효가 의심된다"고 말했다.

그는 “외국의 경우 화학적 거세를 도입하더라도 명백한 성도착증 환자에게 국한해 적용하고 자발적 동의를 얻어 시행한다"며 "그렇게 했을 경우 효과가 나타나는데 우리는 적용 기준도 너무 넓고 동의 받는 절차도 허술하다"고 지적했다.

여성호르몬 투입으로 성범죄를 근절할 수 있을지 의문을 표하는 의학자도 상당수다. 김대성 한림대부속한강성심병원 교수(비뇨기과)는 "약물 투여 기간에만 성욕이 감퇴되는 만큼 본질적 해결책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드물지만 부작용도 나타난다"며 "발열, 기침, 호흡곤란 등 폐렴증세를 포함해 과민반응, 간 기능 저하, 가슴이 나오는 식으로 여성의 신체적 특징이 나타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범죄 예방을 명분으로 체형이나 다를 바 없는 처벌과 함께 심할 경우 건강을 해치는 것은 물론 생명까지 위험하게 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국토해양부가 입법 예고한 운수사업법 개정안 역시 '택시운전'과 '성범죄' 사이의 연계성이 확실하게 입증되지 않고 있다는 점과 함께 성범죄를 저질렀다는 이유로 평생 ‘직업선택의 자유’에 제약을 가하는 것은 너무 과도한 규제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또 이들 법제화가 부작용이나 인권 침해 요소 등에 대한 충분한 검토나 논의 없이 감정적 여론에 편승해 졸속으로 추진되고 있다는 점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화학적 거세법만 해도 지난 2008년 9월에 발의된 이후 거의 논의가 이뤄지지 않다가 최근 잇단 성폭력 사건이 쟁점화 되면서 전격 처리된 경우다. 불과 두 달 전인 지난 4월 유사한 내용의 법률안이 국회 법사위에 상정됐을 때는 인권 침해 논란 등으로 결론을 내지 못하고 계류된 바 있다.

이들 사안에 대한 사회적 논의에 앞장섰어야 할 언론 또한 정치권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한국일보(6월30일 14면)와 동아일보(7월1일 6면) 정도만 다각적으로 다뤘을 뿐이다. 평소 인권 문제에 전향적인 보도태도를 보여 왔던 경향신문이나 한겨레 같은 언론도 이번에는 적극적으로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

잇단 아동 성폭력이 발생하는 사회도 '위험한 사회'지만, 대중의 증오 감정에 휩쓸려 범죄자의 인권은 묵살하거나 침해해도 좋다는 식의 사회 흐름 역시 위험하기는 마찬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