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2월 14일 (금) 16:18   연합뉴스

<새영화> 희망과 절망의 운행기 '택시블루스' 

(서울=연합뉴스) 김지연 기자 = 한때 '서세원의 택시 드라이버'라는 TV 시사코미디 프로그램의 코너가 인기를 끈 적이 있다. 서세원이 택시기사가 돼 승객과 대화하면서 유쾌한 웃음과 따뜻한 정을 나누는 내용이다. 시청자는 TV를 보고 웃으며 '세상은 그래도 아름다운 곳'이라는 메시지를 전해 받았다.

장편 다큐멘터리 '택시블루스'(제작 빨간 눈사람)에서 최하동하 감독은 택시기사로 서울을 누빈다. 그는 서세원처럼 사람들과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그러나 그가 승객과 나누는 것은 따뜻한 정이 아니라 습한 외로움이다. 그의 눈에 비친 세상도 아름다운 곳이 아니라 피로하고 텁텁한 곳이다.

감독은 다큐멘터리를 찍으려 경험 삼아 택시기사 노릇을 한 것이 아니라 먹고살기 위해 택시기사로 일하다 다큐를 찍은 쪽에 가까워 보인다. 그는 카메라를 든 영화감독이 아니라 온전한 택시기사로 카메라 앞에 앉아 있다. 화면에는 택시기사 한 명의 시큼한 눈물과 땀이 그대로 묻어 있다.

손님 개개인의 모습을 하나씩 꺼내보이면서 인생을 관조하는 이 영화는 감독 자신의 모습에 렌즈를 들이댄 곳에서 비로소 거칠고 질척한 모습의 사회를 적나라하게 내보인다. 악덕 사주를 비판하는 택시기사들의 집회와 분신 장면을 담는 그의 카메라는 언뜻 냉정해 보이지만 실은 가장 뜨겁다.

최하동하 감독은 아나운서 정은임이 진행하는 영화음악 프로그램과 교통 상황을 알리는 뉴스를 번갈아 들으며 택시를 몬다. 그의 택시를 탄 손님들은 다양한 모습의 시민이다.

만취해 동네를 몇 바퀴씩 빙빙 돌아도 집을 찾지 못하는 남자도 있고, 아이를 들쳐업고 남편과 더는 같이 못 살겠다며 목놓아 우는 여자도 있고, 창밖 거리를 걷는 여자의 성형수술이 잘됐는지 잘못 됐는지 따지는 여자들도 있다. 어떤 손님은 고 김선일 씨 참수 사건에 대해, 다른 어떤 사람은 영등포 살인사건에 대해 이야기한다. 영화에 등장하는 승객은 모두 98명이다.

그는 점점 택시 모는 노하우를 터득하지만 그의 택시는 언제나 무방비 상태다. 조수석에 앉은 손님은 그의 어깨를 짓누르며 잠이 들고, 택시기사에 대한 불신감에 팽배한 손님은 짧은 거리를 돌아서 온 게 아니냐며 짜증을 낸다. 유흥가에서 택시를 기다리던 손님은 장거리 손님을 찾기 위해 문을 걸어잠근 그의 택시를 발로 걷어차고, 시비가 붙은 다른 택시기사는 욕을 하며 동전을 무기 삼아 돌팔매질한다.

무엇보다 큰 난관은 사납금이다. 분초를 다투며 뛰어도 하루 10만 원을 사납금으로 내고 나면 그의 수중에는 얼마 남지 않는다. 여기에 교통 범칙금을 대납한 회사에서 내미는 가불증에 사인하는 그의 손은 더 없이 서럽다. 스트레스를 가속 페달을 마구 밟는 것으로 푼 그는 결국 교통사고까지 내고 만다.

21일부터 서울 저동 독립영화전용관 인디스페이스에서 만날 수 있다. 청소년 관람 불가.

cherora@yna.co.kr

2007년 12월 14일 (금) 10:35   세계일보

택시에 몸을 싣는 다양한 인간 군상  

나는 대한민국 수도 서울의 택시 기사다. 하루 12시간 또는 18시간 운전하면서 10만원의 사납금을 채우기 위해 평균 25회 승객을 목적지에 나른다.
한 평도 채 안 되는 공간에서 난 오늘도 승객들의 냄새에 젖는다. 소주와 니코틴이 섞인 냄새, 돼지불백 냄새, 콩나물 비린내, 톱밥과 한약 냄새, 그리고 마늘 냄새. 승객에게 뒤통수를 보이고 있어서일까. 나의 후각은 날이 갈수록 예민해진다.

거리에서 누가 손을 들어 택시를 부를지 모르는 탓에 기사들은 사람들에 대한 감시의 눈초리를 게을리 하지 않는다. 늦은밤 한 쌍의 남녀 승객은 택시 옆에서 서로 끌어안은 채 마지막 유치한 멜러를 연출하며 승차를 미룬다. 이들은 기사들의 시선을 전혀 의식하지 못한다.

나는 한푼이라도 더 버는 방법을 잘 알고 있다. 자정 전후에는 차 문을 모두 잠그고 조수석 유리창을 살짝 내린 채 마음에 드는 목적지만 골라 태우면 된다. 승객의 야유가 쏟아지더라도 모른 척하면 그만이다. 장거리라고 다 좋은 건 아니다. 베드타운이 있는 곳은 피해야 한다. 빈 차로 돌아오기 십상이니깐. 최고의 환상 코스는 강북 신촌과 강남 논현동쯤의 유흥지를 왕복하는 것이다. 대박 승객이 잡힌 장소는 기억해 두는 게 좋다. 다른 기사들의 노하우를 무턱대고 믿으면 안 된다. 내 노하우를 아무에게나 말해 주어도 안 된다. 결국 내 수익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최하동하 감독이 직접 택시를 운전하며 3년 동안 찍은 다큐멘터리 영화 ‘택시 블루스’는 각박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자화상이다. 다양한 갈등과 슬픔을 가진 사람들이 술에 취해, 눈물에 젖어 그의 택시에 몸을 싣는다. 그의 카메라는 차 안에서 풀어 헤쳐지는 지치고 피곤한 삶의 모습을 담았다. 거스름돈을 잊고 그냥 가버리는 승객, 아내 몰래 가진 처제와의 부정을 털어놓는 중년 남, ‘연애 한 번 하고 가’라며 기사를 꼬드기는 50대 창녀, 시어머니와의 통화에서 이제 더 이상 게으르고 무책임한 남편과는 못살겠다며 엉엉 우는 여자, 성형수술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는 두 여인, 여자를 두들겨패는 남자와 이에 주눅이 든 여자, 택시비 대신 그림을 건네는 가난뱅이 화가 등 제 각기 다른 인생 군상이 등장한다.

전조등을 켠 차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도로를 채운 서울의 야경은 그다지 아름답지 않다. ‘생존’을 적나라하게 드러내 보이는 것 같아 밤 풍경은 마냥 씁쓸하기만 하다. 고층빌딩과 다리 등 낮시간에 얼굴을 드러낸 서울도 왠지 암울해 보이기는 마찬가지다. 영화는 싸우는 사람들, 비틀거리는 취객의 걸음걸이, 온몸에 불이 붙은 채 바닥을 뒹구는 분신 노동자, 차에 치인 고양이와 쥐, 과속 단속 카메라에 찍힌 횟수만큼 기사들이 벌금 내는 모습 등 오늘 하루도 세상이 어떻게 굴러가는지를 보여준다. 김신성 기자 sskim65@segye.com

택시 블루스-2 년만에 돌아온 택시!

Daum  블로거 송씨네

http://blog.daum.net/songcine81/11824024

2007년 12월 21일 (금) 18:42   경향신문

최하동하 감독 “술취하고 우는 승객이 서울의 맨얼굴”

귀찮아 건성으로 대답해도 끈질기게 수다를 떠는 택시 기사를 만나본 적이 한번쯤 있을 것이다. 대체 그들은 왜 그런 걸까. 최하동하 감독(39)은 외롭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택시를 몰면 승객이 탄 시간은 3분의 1밖에 안돼요. 도심을 헤매는 하이에나가 먹잇감을 찾듯이, 손님을 찾아다니는 게 엄청난 스트레스죠. 연옥에서 헤매는 기분이랄까요. 그 사이를 못견뎌 택시 기사들끼리 차선 경쟁하고 싸우는 일도 많아요. 나중엔 쉴 새 없이 손님을 태워도 외로운 지경이 돼요.”

그는 2003년 여름부터 1년 남짓 ‘서울의 택시운전사’였다. 독립영화 감독인 그에겐 생계수단이 필요했고, ‘언제나 그 자리로 돌아갈 수 있는 직업’을 갖기 위해 택시운전 자격증을 취득했다. 생계 때문에 시작한 일이었으나 천태만상의 승객들을 통해 수도 서울의 맨 얼굴을 들여다보다가 슬금슬금 영화 생각이 났다. 조명과 마이크, 5대의 카메라를 설치해 어두운 택시 안을 촬영장으로 개조했다. 그렇게 완성한 영화가 21일 서울 중구 인디스페이스에서 개봉한 ‘택시 블루스’다.

영화를 보면 일단 ‘세상에 별 사람 다 있네’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최하 감독의 말에 따르면 사람들의 모습은 “숫자만큼 다양”하다. 술에 취해 자기 집도 못 찾는 손님, 택시비 대신 그림을 주겠다는 무명 화가, 창문을 두드리며 끈질기게 호객하는 성매매업소 주인 등. 특히 밤에 승차하는 손님은 90%가 취객이다. 감독은 “한국 사람이 그렇게 술을 많이 마시는지 몰랐다. 밤새 택시에 술냄새가 진동한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사람들이 A조, B조 나뉘어 교대를 하는 게 아닐까 생각이 들 정도예요. 낮시간엔 A조가 나왔다가 해가 지면 전혀 딴 사람인 B조가 나와 거리를 헤매요. 밤에 탄 손님이 다음날 아침에 다시 탔다면 분명 다른 모습일 걸요.”

감독에 따르면 서울은 ‘슬픈 도시’다. 틀어놓은 라디오에선 연방 하루에 한 명꼴이라는 한강 투신 소식이 들려온다. 그는 자신의 영화를 통해 “서울이 내놓은 토사물과 눈물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밤에 뒷자리에서 훌쩍훌쩍 우는 여자 손님이 그렇게 많아요. 제가 끼어들 순 없지만 마음이 굉장히 아프죠. 대체 왜 울까 하는 생각도 들고요. 밤이면 슬픔만 남을 때까지 모든 걸 게워내는 것 같아요.”

영화 작업과 병행한 택시 운전은 쉽지 않았다. 하루 12시간 근무하면서 평균 25회 손님을 받지만 10만원 안팎의 사납금을 채우기도 버거웠다. 택시 기사끼리 모이면 나오는 얘기는 딱 두가지라고 했다. ‘진상’(몹시 추잡한) 손님 욕과 “몇 개 벌었냐”는 질문. “12개 했다”는 답은 “12만원 벌었다”는 뜻이다.

“희망을 품고 시작해 접고 들어가요. 오직 목표량을 채우기 위해 사람이 원숭이처럼 단순해진다고 할까요.”

영화는 형식적인 측면에서 다큐멘터리와 픽션의 엄격한 경계에 의문을 제기한다. ‘택시 블루스’의 일부 장면은 실제 손님을 촬영한 부분이지만, 어떤 부분은 훗날 감독의 경험을 재구성해 배우들과 재연한 것이다. 그러나 어떤 부분이 다큐이고, 어떤 부분이 재연인지는 구분되지 않는다. 최하 감독은 “난 ‘택시 블루스’가 다큐멘터리라고 말한 적이 한 번도 없다. 연출된 장면이 많다고 해서 실제의 퍼덕거리는 느낌을 놓치진 않았다”고 말했다.

최하 감독은 지금까지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의 투쟁을 그린 ‘민들레’, 우리 안의 애국주의와 민족주의를 풍자한 ‘애국자 게임’ 등을 만들어왔다. ‘택시 블루스’는 그의 첫 개봉작이다. 그는 2개월 전 뉴욕으로 건너가 체류 중이다. 유학도, 영화 작업도 아니다. 그가 1년간 택시 기사로 살았듯, 뉴욕에서도 ‘살고 있다’. 차기작 계획을 묻자 “이제는 섹스를 얘기할 때”라며 “적어도 ‘색, 계’보다는 재미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글 백승찬·사진 이상훈기자 myungworry@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