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경기도 과천 서울대공원 일대는 택시 수천 대로 꽉 막힌 정체 상태가 종일 계속됐다. 택시들이 서울대공원으로 진입하는 도로의 편도 5차선을 완전히 메웠고 공원 나들이객들은 택시에 둘러싸여 옴짝달싹도 못했다.

서울대공원 주차장에선 이날부터 서울 시내 택시의 미터기 조정 작업이 진행됐다. 서울시에 따르면 14일부터 오는 25일까지 서울대공원·난지천공원·태릉사격장·창동역 주차장 등 4곳에서 미터기 조정 작업이 진행된다. 지난 12일 실시된 택시 요금 인상에 따라 미터기 프로그램의 기본요금을 3000원으로, 거리요금을 144m당 100원에서 142m당 100원으로 바꾸는 등의 작업이다.

서울시가 이날 서울대공원에서 미터기를 조정하라고 통보한 택시는 모두 6000여대였다. 서울대공원에서 임차한 주차 면적이 약 6000면이고, 3교대로 시간을 나눠 진행하기 때문에 별 무리가 없을 것으로 판단했다. 하지만 서울시의 판단은 완전히 빗나갔다. 예상보다 미터기 조정에 시간이 걸리면서 택시들이 공원 인근 도로에 장사진을 이뤄 서울대공원 일대는 극심한 정체가 빚어졌다. 법인택시 기사 서용석(58)씨는 "오전 8시에 와서 4시간째 기다리고 있는데 아직 기약이 없다. 사납금 7만∼8만원을 고스란히 내 돈으로 물어야 할 판"이라며 발을 굴렀다.

시민은 영문도 모르고 택시들에 포위당했다. 신모(여·43)씨는 "경북 왜관에서 모처럼 가족 나들이를 위해 올라왔는데 공원에 접근도 못 하고 있다"고 했다.

미터기 조정 작업은 미터기 회사가 미터기 외부를 뜯은 다음 내비게이션처럼 프로그램을 업데이트하면, 서울시 품질시험소 직원들이 프로그램 작동을 검증하는 간단한 과정으로 진행됐다. 하지만 택시기사 수백명이 저마다 자기 미터기부터 손봐달라고 나서면서 아수라장이 됐다. 미터기 회사 관계자는 "원래 6000여대가 오기로 돼 있었는데 1만3000대가 왔다"고 했다.

서울시는 "순서를 정해 줬는데도 택시기사들이 미리 미터기를 조정하려고 한꺼번에 몰리는 바람에 혼잡이 가중됐다"고 말했다. 당초 공지한 인원(6000명)보다 이날 방문한 택시기사 수가 훨씬 많았다는 것이다. 난지천공원(1440대 예정)과 태릉사격장 주차장(1260대 예정)에도 계획보다 많은 1500대가 한꺼번에 몰리며 한때 도로가 정체됐다. 서울시 관계자는 "이날 미터기 조정 대상이 아닌 차들까지 '일단 가서 바꿔달라고 하면 바꿔주겠지'라는 생각에 몰리면서 혼잡이 발생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기사들은 "한푼이라도 더 벌어야 하는데 빨리 와서 미터기를 교체해야 할 것 아니냐"고 불평했다.

서울시의 준비가 부족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이날 현장에는 대기 번호표도 없었고 진행요원도 20여명밖에 되지 않아 혼란을 부채질했다. 결국 서울시는 14일 저녁 서울 시내 225개 법인택시회사에 "내일부터 각 회사 차고지에서 미터기 조정을 한다"는 공문을 보냈다. 이에 따라 15일부터는 담당자가 회사 차고지를 직접 방문해 법인택시(총 2만2000여대)의 미터기를 조정하고, 개인택시는 당초대로 4곳 주차장에서 조정 작업을 진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