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눈의 목격자’ 위르겐 힌츠페터는 신변의 위협을 무릅쓰고 1980년 광주의 진실을 전세계에 알렸다.ⓒ자료사진

고(故) 위르겐 힌츠페터(Jürgen Hinzpeter) 기자의 취재기를 다룬 영화 <택시운전사>(가제)가 준비 중이라 한다. 힌츠페터 기자를 태우고 광주에 간 택시운전사 김사복 씨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펼칠 것이라 한다. 1980년 오월이었고 광주였다. 그는 외국인 기자를 태우고 다녔고 그 외국인 기자가 찍은 폭탄 같은 진실을 함께 실어 날랐다.

만남은 우연이지만 100 퍼센트 우연이란 것도 없고 우연으로 시작한 사건은 선택의 기로를 거쳐 역사를 만들어간다. 1980년 오월 광주라는 시공에서 택시기사 김사복 씨는 어떤 선택의 기로에 섰을까? 본인 스스로의 안전도 보장되지 않는 상황에서 그러한 선택을 하게 된 그는 아무런 고민이 없었을까? 선택으로 인해 빚어질 위험과 찰나의 선택을 영화는 어떻게 묘사할까, 아니면 영화는 다른 선택을 할 가능성이 없는 상황을 설득력 있게 보여 줄 것인가?

김사복 씨의 역을 송강호 씨가 맡을 것이라 하니 고개가 끄덕여진다. <넘버 3>, <초록 물고기>에서 그는 어정쩡한 양아치들이 권력을 잡고 있는 나라에 사는 양아치 혹은 삼류의 역할을 적절하게 보여 주었다. 흔히들 이런 경우를 두고 ‘서민적인 캐릭터’라 하기도 한다. 한편, 분단을 배경으로 한 영화 공동경비구역(JSA)에서 이북 군인 역을 맡았으며 미군범죄가 배경이 된 <괴물>에서는 희생자 가족의 가장이었다.

이러한 그가 그리 잘 살지 못하는 직업 택시 운전사이면서 동시에 역사적인 큰일을 해낸 김사복 씨의 역할을 맡는다는 것은 잘 어울린다. 오월 광주는 한국 전쟁 이후 가장 쓰라린 집단기억이기 때문이다. 양아치 역할, 희생자 역할을 다 해 본 그는 수더분한 표정에 가끔 노출하는 찰나의 변화와 함께, 김사복 씨의 선택을 보여줄 것으로 기대된다. 개인의 고단함과 역사적 고난의 흔적을 함께 담아낼 수 있는 배우 송강호 씨를 통해 평범한 직업을 가진 시민 김사복 씨가 어떻게 역사에 기여하게 되는지를 볼 수 있을 것 같다. 제작 초기에 있는 영화가 어서 완성되었으면 좋겠다.

영화 ‘살인의 추억’에 형사 박두만으로 출연했던 송강호ⓒ영화 스틸컷

영화는 ‘꿈의 공장’이라 하였다. 그 꿈은 악몽이 될 수도 있고 백일몽이 될 수도 있고 ‘전망’이란 의미의 꿈이 될 수도 있다. 나는 송강호 씨의 연기를 통해 실감나게 묘사될 평범한 사람의 꿈과 선택을 영화에서 기대한다. 관객들이 그 영화를 만나면서 스스로 지극히 평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권리를 찾는 꿈, 역사를 만들어나가는 꿈을 꿀 수 있기를 바란다.

1980년 오월은 독일에 “마사커”(학살) 혹은 “광주 마사커”(광주 학살)이란 이름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 시간에 광주에 살지 않은 사람에게는 입에 올리기도 무거운 이야기가 영화화되어 독일에서 상영될 날이 벌써 기다려진다. 그날이 오면, 그 잔혹한 이름 “마사커” 외에도 진실을 전파한 독일인 기자 위르겐 힌츠페터, 진실을 실어 나른 택시 운전수 김사복 같은 이름이 두루 회자될 것이다. 그래서 옳은 선택을 통해 살아남는 진실에 대한 믿음과 꿈이 인간 세상에 좀 더 번질 수 있기를 기대한다. 아직 1980년 오월에서 그리 멀지 않은 오월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