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인택시 하루 9.9~11시간 운행, 0.8시간 쉬어 젊은이도 힘들어 관광버스기사 1일 18시간 운전… 3~4일 연속 하는 경우도 많아
주부 정모(여·30)씨는 지난 2일 서울 서초구에서 친구를 만난 뒤 마포구에 있는 집으로 돌아가려 택시를 탔다. 60대 후반으로 보이는 택시 기사는 요금기를 켜고 차를 출발시킨 뒤 행선지를 물었다. 정씨가 목적지를 말하자, 기사는 "어디인지 모르겠다"며 내비게이션에 주소를 찍어달라고 했다. 경로 표시가 뜨자 기사는 운전대를 잡은 채로 얼굴을 내비게이션에 바짝 댔다. 기사는 반포대로를 달리는 도중에도 종종 내비게이션을 보기 위해 몸을 구부렸다. 정씨가 "불안하니 그러지 말아달라"고 했지만, 기사는 "잘 안 보이는데 어쩌라는 거냐"며 역정을 냈다. 참다못한 정씨가 "제가 보면서 알려 드릴 테니 제발 내비게이션은 보지 말아달라"고 한 뒤에야 기사는 앞만 보고 운전했다.
고령화 사회의 그늘이 서울 택시업계를 덮치고 있다. 서울시의회 성중기 새누리당 의원이 서울시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서울시 택시기사 중 51％인 4만3429명이 60세 이상이었다. 70세 이상도 8137명으로 9.5％에 달했다.
지난달 30일 서울역 인근에서 머리가 하얗게 센 택시 운전기사가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서울시에 따르면 지난 6월 기준으로 60대 이상의 고령자가 서울시 택시 8만5727대 중 절반 이상(4만3429대)을 운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지호 기자
택시기사들은 연령에 관계없이 똑같은 조건에서 일을 한다. 젊은 기사들에 비해 고령자들의 피로도가 훨씬 더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서울노동권익센터가 지난달 서울 택시기사 704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법인 택시기사는 한 달에 25일 넘게 일하며 하루 평균 9.9~11.7시간 일하고 0.8시간 쉬었다.
도로교통공단 강수철 박사는 "하루 10시간 넘게 일하며 1시간도 채 쉬지 못하는 것은 젊은 사람에게도 힘든 일"이라며 "피로가 쌓이면 반사신경 같은 신체 능력이 전체적으로 더 떨어지는데, 몸이 쇠약한 고령자일수록 충격이 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한꺼번에 많은 승객을 실어나르는 버스기사도 근무시간이 길기는 마찬가지다. 지난 7월 17일 영동고속도로 봉평터널에서 관광버스 6중 추돌사고로 4명이 숨졌을 때 전국자동차노동조합 연맹은 "대다수 관광버스 운전기사가 1일 18시간 운전 후 2~3시간 잠을 자고 다음 날 다시 운행에 들어가고, 1일 18시간 운전을 연속으로 3~4일 하는 경우도 많다"는 논평을 냈다.
같은 조건에서 일하다 보니 체력이 약한 고령(高齡) 운전자의 사고율은 젊은 기사보다 높다. 교통안전공단이 2013년 10월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사업용 차량을 25년 이상 운전한 65세 이상 운전자 가운데 73.1％가 직전 3년간 사고를 낸 경험이 있었다. 반면 사업용 차량 운전 경력 5년 이하인 운전자의 3년간 사고율은 7.5％였다. 오랜 운전 경험이 있는 고령 운전자 사고율이 신참보다 오히려 10배가량 높은 것이다. 서울 관악구 주민 조모(28)씨는 "70대 정도로 보이는 운전사가 모는 택시를 타고 신림동 골목길에 들어간 적이 있는데 차 오른편에서 아이가 뛰쳐나와도 멈추질 않더라"며 "아슬아슬하게 차를 세우고서 기사가 '피곤하면 눈이 더 흐려지더라'며 웃는데, 불안해서 더 타고 있을 수 없어 바로 내렸다"고 했다. 교통안전공단에 따르면 지난 2011년 65세 이상 고령 택시 운전자가 낸 사고는 2114건으로, 전체 택시 사고 1만8822건 중 11.2％였다. 4년 후인 지난해 고령 택시 운전자가 낸 사고는 3353건으로 늘었다. 전체 택시 사고에서의 비중도 21％로 급증했다.
정부는 안전운전이 어려울 정도로 건강이 나빠진 고령 운전자를 가려내기 위해 올해부터 버스 운전기사를 대상으로 정밀검사를 실시한다. 검사에서 탈락하면 면허 갱신이 불가능해진다. 그러나 같은 사업용 차량이지만 택시 기사는 검사 대상에서 제외됐다. 고령 택시기사들은 65세 이상 일반 운전면허 소지자와 마찬가지로 5년마다 정기적성검사를 받으면 되는 것이다. 개인택시기사의 경우 건강검진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양완수 서울시 택시물류과장은 "법인택시는 노조에서 정기건강검진을 받게 하지만, 개인택시는 자영업자와 마찬가지로 본인이 받지 않으면 강제할 방법이 없다"고 했다. 서울시의 60세 이상 택시운전자 가운데 69%인 3만52명이 개인택시 운전자였다.
교통 전문가들은 "버스보다 사고가 자주 발생하는 택시 기사 관리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작년 한 해 동안 65세 이상 버스 운전사가 낸 교통사고는 302건에 불과했지만, 같은 연령대 택시 운전사가 낸 사고는 그 11배인 3336건에 달했다.
[경고등 켜진 '실버 운전'] [1]
선진국은 운행 시간 제한 日·EU 하루 9시간 이상 금지… 韓, 운송업계 반발로 규제빠져
사업 실패 후 17년째 법인 택시를 몰고 있는 최모(69)씨는 오후 4시에 출근해 오전 4시까지 12시간 동안 손님을 태운다. 식사 시간 30분을 제외하곤 줄곧 차 안에 앉아 있다. 그는 "사납금 13만2000원을 채우려면 하루 11시간 이상씩은 무조건 달려야 한다"며 "사납금이 연령별로 달라지는 것도 아니니 체력이 달려도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한 달에 26~27일을 근무한다. 최씨는 "60대 후반이 되니 두세 시간만 운전해도 목과 허리가 뻣뻣해진다"고 말했다.
국내 65세 이상 택시기사들은 고령(高齡)에도 20~50대 다른 기사들과 마찬가지로 하루 10시간 이상씩 운전대를 잡고 있다. 교통안전공단 조사에 따르면, 1일 2교대 택시기사들은 하루 평균 10.4시간을, 개인택시 운전자들은 10.9시간 동안 운행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휴식시간은 하루 두 끼 식사시간을 합쳐 0.8시간밖에 안 됐다. 식사시간을 제외하면 거의 온종일 운전대를 잡고 있는 것이다.
선진국들은 운전기사와 승객의 안전을 위해 택시·버스 등 사업용 차량의 운행 시간에 제한을 두고 있다. 체력이 약한 고령 운전자의 사고 위험을 낮추기 위해서다. 일본 택시 운전자는 하루 9시간 이상 차를 몰 수 없다. 4시간 이상 연속 운전도 금지하고 있다. 또 4시간을 몰았다면 30분을 쉬어야 하고, 8시간을 운행하면 반드시 1시간 이상 휴식하도록 하고 있다. 1주일 최대 운행 시간도 40시간으로 엄격히 규제한다. 일본 택시는 대부분 월급제여서 사납금을 채우기 위해 무리할 필요가 없다. 유럽연합(EU)도 택시 운전자들이 연속해서 4시간 30분 이상 운전하지 못하게 한다. 4시간 30분을 운전했다면 45분은 무조건 쉬어야 한다. EU 역시 일 최대 운전시간을 9시간 이하로 제한한다.
우리 정부도 지난 7월 사업용 차량 운전자들이 4시간 연속 운전을 하지 못하도록 하는 '사업용 차량 교통안전 강화대책'을 내놨다. 4시간 운전할 경우 30분은 쉬도록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대책은 화물차와 전세버스에만 해당될 뿐, 택시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또 하루 최대 운행 시간을 제한하는 내용은 운송업계의 반발로 빠져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고령운전자 사고 14% 이미 넘어
고령자 교통사고는 전체 운전자 교통사고보다 훨씬 빨리 증가하고 있다. 도로교통공단에 따르면, 65세 이상 운전자가 일으킨 교통사고는 2011년 1만3596건에서 2015년 2만3063건으로 4년 만에 70% 급증했다. 같은 기간 전체 교통사고는 22만1711건에서 23만2035건으로 4.7％ 늘어나는 데 그쳤다. 전체 교통사고에 비해 고령자가 일으킨 교통사고가 15배 빠른 속도로 늘어난 것이다.
고령자 교통사고의 급증세는 고령 운전자가 늘어나는 속도와 비교해도 빠르다. 65세 이상 운전면허 소지자는 2011년 145만1437명에서 2015년 229만4058명으로 58% 늘어났다.
고령자는 교통사고를 당해 사망할 가능성도 다른 연령대보다 높다. 전체 교통사고 사망자 수가 2011년 5229명에서 지난해 4621명으로 줄어든 반면, 교통사고로 사망한 65세 이상은 같은 기간 1724명에서 1814명으로 오히려 늘었다. 지난해 교통사고 사망자 중 39％가 65세 이상이었던 것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기준 총인구 대비 65세 이상 인구 비율은 약 13.2％로, 유엔이 정한 고령사회의 기준(14%)에 가까워졌다. 그러나 전체 교통사고 중 고령자 사고 비중은 이미 2013 년 14.1％를 기록했고, 지난해 15.5％까지 상승했다. 정의석 도로교통공단 교수는 "교통사고만을 놓고 보면 우리나라는 3년 전부터 이미 '고령사회(65세 이상이 전체 인구의 14% 이상)'에 도달했다"며 "운전면허를 소지한 고령자가 빠른 속도로 늘고 있기 때문에 65세 이상 교통사고 비중이 20% 이상인 '교통사고 초고령사회'도 멀지 않았다"고 말했다.
서울 택시기사 절반이 '60代 이상'
65세이상 기사 사고율 73%인데 정밀적성검사 대상에 빠져있어
최근 60대 택시기사가 운전 중 의식을 잃고 숨지는 사고가 잇따라 발생하면서 시민 안전과 직결되는 고령(高齡) 운전자 관리에 경보등이 켜졌다. 지난달 30일 오후 10시 20분쯤 승객을 태운 채로 서울 동작구 대방지하차도를 운행하던 택시기사 김모(62)씨가 호흡곤란을 호소하다 숨졌다. 경찰 조사 결과, 김씨는 평소 심장 이상이 있었지만 별다른 치료를 받지 않고 계속 운전을 해온 것으로 밝혀졌다. 지난 8월 대전에서 남자 승객 2명을 태우고 가다 심장마비로 사망한 택시기사 이모(62)씨는 평소 건강검진을 제대로 받지 않았다고 한다.
교통안전공단에 따르면, 전국 택시기사 가운데 65세 이상은 지난해 말 현재 19.5％(5만4774명)다. 서울시의 경우 지난 6월 기준으로 60세 이상 택시기사의 비중이 전체 8만5727대의 약 51％인 4만3429대에 이르렀다. 직장인 신모(52)씨는 "퇴근길에 택시를 탔는데 일흔 살 넘어 보이는 기사가 '귀가 잘 들리지 않습니다'는 안내 문구를 붙여 놓고 있었다"며 "집에 가는 내내 불안했다"고 했다.
교통안전공단의 2013년 10월 논문에 따르면, 사업용 차량을 25년 이상 운전한 65세 이상 운전자 가운데 73.1％가 직전 3년간 사고를 낸 경험이 있었 다. 반면 운전 경력 5년 이하인 운전자의 3년간 사고율은 7.5％였다. 고령 운전자의 사고율이 신참보다 10배가량 높은 것이다.
정부는 올해부터 65세 이상 고령 버스 운전사는 3년(70세 이상은 매년)마다 '운전 적성 정밀 자격 유지 검사'를 받도록 했다. 그러나 65세 이상 운전자 수가 버스(7969명)보다 7배 가까이 많은 택시는 검사 대상에서 뺐다.
대형버스 `4시간 연속 운전·30분 휴식` 의무화…택시는 사각지대 놓여
[앵커] 화물차에 이어 대형버스 운전자도 4시간 이상 연속으로 운전하면 최소 30분을 반드시 쉬어야 합니다. 국토교통부는 이같은 내용의 ‘여객자동차 운수 사업법’ 시행령을 입법 예고한다고 밝혔습니다. 김유리 기자입니다.
[기자] 지난 7월 17일 영동고속도로 봉평터널 입구. 졸음운전을 하던 관광버스가 승용차 5대를 잇달아 추돌했습니다. 이 사고로 20대 여성 4명이 숨지고 37명이 다쳤습니다. 잠깐의 졸음운전이 돌이킬 수 없는 대형사고로 이어진 것입니다. 정부는 이처럼 대형버스와 화물차 중대사고로 국민 안전에 대한 우려가 커지자 관련 대책을 내놨습니다.
지난 7월 화물차 운전자의 교통안전 강화대책을 발표한 데 이어 오늘은 사업용 차량 운전자의 최소 휴게시간을 보장하는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시행령과 시행규칙 일부 개정안을 입법 예고한다고 밝힌 것입니다. 이에 따르면 대형버스 운전자도 천재지변과 교통사고 등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4시간 이상 연속으로 운전하면 최소 30분을 반드시 쉬어야 합니다. 퇴근 후 다음 출근 시까지는 의무적으로 최소 8시간을 연속해서 쉬어야 합니다. 이를 위반한 운송사업자는 사업을 일정 기간 중단하거나 과징금 180만원의 행정처분을 받게 됩니다.
하지만 정부가 7월 내놓은 ‘사업용 차량 교통안전 강화대책’ 그리고 이번에 입법예고한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 시행령에 택시는 빠져있습니다. 교통안전공단 조사에 따르면 개인택시 운전자들은 하루 평균 10시간 이상 운행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휴식시간은 하루 두 끼 식사시간을 합쳐 1시간이 채 안 됐습니다. 식사시간을 제외하면 거의 온종일 운전대를 잡고 있는 것입니다.
일본의 경우 택시 운전자가 하루 9시간 이상 차를 몰수가 없습니다. 4시간 이상 연속 운전했다면 30분을 반드시 쉬어야 하고 1주일 최대 운행 시간도 40시간으로 엄격히 규제하고 있습니다. 교통전문가들은 버스보다 택시가 사고가 자주 발생하는 것을 감안할 때 우리나라에도 택시 기사의 휴게시간을 비롯해 관련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습니다. PBC뉴스 김유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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