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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ㆍ작성자 |
민주택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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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ㆍ작성일 |
2010/05/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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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이 된 택시 운전사 허세욱님께
| 살아낸 당신, 정말 고마워요...별이 된 택시 운전사 허세욱님께 |
| 이야기 우물(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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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4월1일 "한미FTA 결사 반대"를 외치며 분신하여, 그해 4월15일 세상을 떠난 허세욱 열사를 추모하는 평전 <별이 된 택시 운전사>가 올해 출간되었다.(송기역 저, 삶이 보이는 창)
아래에 실은 글은 열사이기 이전에 외롭고 고단했던 삶을 산 사람, 죽는 순간까지 자신과 세상을 사랑한 한 택시 운전사의 삶을 담은 책에 대한 감상문이다. 이 글은 허세욱 열사가 마지막까지 몸담았던 참여연대에서 발간하는 월간 <참여 사회>에도 함께 실렸다.
 아저씨, 지금 이곳은 비가 내리고 있어요. 내일은 큰 아이가 소풍가는 날이라 좋아하는 초밥으로 도시락을 사줄려고 유부도 잔뜩 사놓았고, 말랑말랑한 제리랑 초코렛이 듬뿍 들어간 과자, 그리고 목마르면 마시라고 이온 음료도 사두었는데, 내일 아침엔 돌풍까지 동반한 비가 올지도 모른다니 이 일을 어쩌죠? 만약에, 정말 일기 예보대로 험한 날씨로 아이가 소풍을 못가게 된다면, 모처럼 저도 아이처럼 외출 가방에 소풍 간식거리를 잔뜩 챙겨 넣고 오후에 있을 약속 장소로 나갈려고 해요.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마음 먹은 대로 말하는 게 서툰 저는 사람들과의 만남이 힘들 때가 많아요. 그럴 때, 아저씨처럼, 가방에 담아둔 간식거리를 꺼내 내밀면 제 마음이 좀 전달될까요? ‘사랑한다’, ‘미안하다’, ‘다음에 또 만나고 싶다’, 그런 마음, 어떻게 나타낼지 몰라 마음속에서 그저 쩔쩔 맬 때, 달콤한 사탕 하나 내밀면 제 마음도 좀 가벼워질까요?
시인이면서 르포 작가이기도 한 송기역이 쓴 아저씨의 삶에 대한 글을 읽게 되었을 때는, 제가 막 육개월간의 마음 공부를 끝냈을 때였어요. 육개월이란 시간은 마음공부를 하기엔 턱없이 짧은 시간이긴 하지만, 그래도 제겐 난생 처음 정면으로 저 자신을 만난 시간이었답니다. 공부를 하던 과정 중에서 상담을 받은 일이 있었는데요, 그때 저를 상담하신 선생님의 말씀 중 ‘ 보살핌을 받지 못한 유년의 아픔이 계속 누군가를 보살펴야 한다는 강박증을 불러 왔다.’는 부분이 유달리 기억에 남아요. 사실 저는 오랫동안 친정 엄마를, 언니를, 하다 못해 제가 해결할 수 없는 이웃의 문제까지도 가슴에 안고 안절부절하며 살아 왔거든요.
도망치듯 빠져 나온 고향, 아저씨의 유년은 밑동 깨어진 항아리였을까요? 옷을 껴입어도 바람이 드는, 물을 부어도 늘 메말라 있는, 아저씨가 떠나온 삶의 근원은 애초 채울 수도 없을 만큼 오랜 아픔이 배여 있었습니다. 영혼이 떠난 아저씨의 빈 몸조차도 온전한 유골로 담지 못한, 무덤 속의 그 쓸쓸한 빈 관처럼, 오실 때나 가실 때나 모진 세상, 피붙이 같은 뜨거운 사랑 한번 받지 못하고 떠난 그 삶이 왜 이토록 가슴에 머무는 걸까요.
상담자로부터 들은 '보살핌을 받지 못한 유년의 아픔'을 돌아보던 중, 저는 평소에 웃고 넘기던 이야기에도 자주 버럭 화를 내곤 해서 주변 사람들을 당황케 하곤 했습니다. 제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는 감정과 행동의 변화에 힘들어 하고 있을 즈음, 같이 공부하던 동료들과 떠난 여행길에서 함께 하룻밤을 묵은 일이 있었습니다. 아침이 되자, 제 옆에서 잠들었던 동료가 하는 말이, 제가 밤새 어린 아이의 목소리로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하더랍니다. 가족들 하나하나를 불러내며 어린 시절의 아픔을 다 이야기하더랍니다. 그날, 차마 동료에게 물어보진 못했습니다. 내가 무엇을, 어디까지 이야기했는지 대답을 듣기가 두려웠습니다. 그만큼 나의 유년은 정면으로 만나기 두려운 시간이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겉잡을 수 없이 흐르던 눈물이, 아저씨의 삶을 만나면서 또다시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아저씨의 유년이 따뜻했더라면, 아니, 어른이 되어서도, 아저씨도 나처럼, 실아온 날의 생채기를 보듬고 달랠 수 있었더라면, 살아 생전 덜 외롭게, 어쩌면 지금도 우리와 함께 이 땅 위에 있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이제는 다 소용없는 한탄이 쏟아졌습니다.
아, 아저씨, 정말 죄송해요. 아저씨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고 싶어 쓰기 시작한 이 글이, 온전치 못한 제 유년의 아픔에서 오래 머물렀네요. 이럴려고 시작한 게 아닌데, 아저씨의 삶을 읽어 내려가던 내내, 이상하게도, 치열했던 삶 속에서도 풍겨 나오던, 막막한 해풍처럼 가슴을 쳐오던 외로움을 잊을 수가 없었어요. 막혀 있던 수도관처럼,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저는 목메이게 다가서던 외로움이 먼저 터져 나오네요.
‘한미 FTA 반대’를 외치며 분신한 택시 기사 정도로만 알고 있었던, 아저씨에 대한 건조했던 제 기억이 이제는 제 삶을 돌아보게 하고 가까이 있는 사람들을 자세히 들여다 보게 합니다. 누구보다 고통스럽게 아저씨에 대한 기억과 추억을, 어쩌면 마음 속에 남아있던 죄책감까지도 불러내어 아저씨를 다시 이 땅에 오게 한 당신의 동지들, 떠나고 나서야 그 소중함을 더 절실히 깨닫는 아픔에 지금 이 순간도 가슴을 치며 흘러내리는 누군가의 눈물도 이 책속에는 흐르고 있습니다. ‘괜찮다, 다 괜찮다’하며, 오히려 ‘미안하다’고 무덤속에서조차 주변 사람들을 염려할 아저씨의 성품이 눈 감아도 훤하게 다가옵니다.
아저씨,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아저씨와 저는 참 닮은 면이 많이 있었어요. 생의 첫기억인 유년이 그러했고, 차오르는 마음을 표현할 방법을 몰라 자주 화를 내거나 술을 마시곤 했던, 어찌 보면 결국은 자신을 더 힘들게 했던 서투른 삶의 방법조차도요. 전 알아요. 아저씨가 철거 싸움에서 시작해 관악 주민 연대, 봉천 놀이마당, 참여연대, 한독운수 노동조합에 몸을 담으면서 마침내 미선이 효순이의 죽음을 품고 평택 황새울 벌판에 정착하려는 헬기를 향해 깃발을 들고 달려 가신 그 일까지, 아저씬 당신이 품고 있던 아픔이 이 세상에 되풀이되지 않기를 바랬던 사람이란 걸.
누구보다도 아픈 삶을 사신 당신은 부조리한 세상이 만들어 내는 비극을 본능적으로 알고 계셨던 거죠. 제가 제 아픔을 혼자서 안고 자학했던 반면, 당신은 스스로를 갈고 닦아 세상의 도구가 되고자 했던 거죠. 원망하긴 쉬워도, 세상을 바꾸려 실천하긴 어렵다는 걸, 상처받은 사람에게는 더더욱 어려운 일이라는 걸, 당신의 발자국이 이토록 선명한 건 그 어려운 삶을 당신이 살아냈기 때문입니다. 아, 하지만 허허로운 황새울 벌판을 달려가신 아저씨의 가슴 속, 모래바람처럼 따갑고 뿌연 그 바람 속으로 좀더 가까이 다가가 당신을 향해 깊은 손 내밀지 않았던 우리들의 빈약함은 오래도록 삶을 누를 것 같습니다.
잘할게요. 뒤늦고 때늦어서 어리석다 여겨지지만, 이제라도 잘 살게요. 허투루 버리는 유인물 하나도 다시 챙겨 나눠 보고, 밥 때가 되면 배 곯고 있는 사람 없는가 살펴보고, 아무 말 못하고 자주 내 주변을 그저 서성이기만 하는 사람 있다면, 그 속을 가만 가만히 들여다 볼게요. 살아 생전은 물론이고, 세상 떠난 아저씨를 위해서도 아무 일 한 것 없지만, 그저, 이제라도 잘 살게요. 잘 살기 버거운 날도, 잘 살아야 한다 마음먹으며 노력할게요.
아저씨, 정말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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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해식(르포작가) / 2010-05-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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