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약문>

  1997년 3월 제정된 현행 노조법은 단체협약으로 규정하거나 사용자의 동의가 있으면, 근로계약 소정의 근로를 제공하지 않고 노동조합의 업무에만 종사하는 것을 허용하고 있다(제24조 제1항). 그러나 사용자는 노조 전임자에 대해서 임금지급 의무가 없으며(제24조 제2항), 노조 전임자에게 급여를 지급하는 것을 부장노동행위로 규정하고 있다(제81조 제4호). 그러나 이 법은 노동조합을 급격히 위축시킬 것이라는 우려 속에서 2001년까지 5년간 유예하기로 되었다. 그때부터 집단적 노사관계의 ‘뜨거운 감자’로 부상하여 합리적 해결방안을 찾기 위한 노력이 이루어지고 있으나 10년 이상 지속된 논의는 노사 간 입장 차이만을 선명하게 부각시켰을 뿐이다.

  ‘전임자’는 노동조합의 업무에만 종사하는 자로서 사람의 몸에 비유하자면 신체에 골고루 혈액을 공급하는 ‘심장’과도 같다 할 수 있다. 기업별 노동조합 체계가 정부에 의해 강제로 이식되면서 전임자는 곧 기업별 노동조합의 임원이기도 하였다. 노조 전임자 제도가 권리로 보장받게 된 계기는 1987년을 지나면서 노동조합의 힘이 성장하게 된 결과로 보는 것이 대체적인 견해이다. 그리하여 1987년 이후에는 노조 전임자 제도를 기초로 하는 노동조합이 작업장 통제를 중심으로 현장에서 조직적인 근거를 구축해 왔다. 노조 전임자는 사업장 통제 능력을 통해서 단체교섭, 노사협의회, 노조의 일상적인 활동에서 사업장 내부의 노사관계 이슈를 사용자에게 제기하고 이를 노동조합 조합원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해결하였다. 노사관계시스템이라는 큰 그림 속에서 본다면 노조 전임자는 사용자 측이 노동조합 활동을 인정하고 보장하는 노사관계의 ‘관행’이자 ‘제도’로서, 노조 측에서는 노조 활동의 권리를 보장받는 관행으로서 굳어져 왔다고 할 수 있다. 즉 87년 이후 한국 노사관계 시스템을 유지하는 핵심적 기능 가운데 하나가 전임자 제도라고 평가할 수 있는 것이다.

   이 보고서의 연구 목적은 외국은 어떠한 원칙에 입각하여 전임자 제도를 다루고 있는지를 살펴보는 동시에 전임자 급여 지급 금지에 대한 법률적 검토를 하는 것이다. 제2장에서는 그 동안 전임자 제도를 둘러싸고 논의된 내용을 개괄할 것이며, 제3장에서는 5개국(프랑스, 영국, 독일, 미국, 일본)의 전임자 제도를 살펴 볼 것이다. 이때 주된 관점은 노조 전임자 임금 지급 문제에 대해서 ‘국가의 개입 여부’가 중요한 잣대가 될 것이다. 제4장에서는 1987년 개정된 노조법의 제24조 2항과 81조 4항에 대한 법률적 해석의 문제에 대해서 논의한다. 마지막으로 5장에서는 3장과 4장의 내용을 토대로 전임자제도에 대한 올바른 시사점을 도출하고자 한다.

   1996년 노개위에서 노동법 개정 논의 시 경영계는 전임자에 대한 급여 지급을 금지하는 법제화를 공세적으로 주장하였다. 이에 대해 노동계는 기업별노조가 지배적인 현실에서 전임자에 대한 급여지급의 금지는 노조 활동의 위축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는 이유로 법제화에 반대하였다. 전임자 급여 지급의 금지를 강력히 주장한 사용자들은, 교섭 상대방에게 자금을 지원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맞지 않으며, 급여를 지급받는 노조 간부가 ‘자주적’이라고 보기 어렵기 때문에 전임자 급여 지급을 부당노동행위로 규정하여 이를 제한할 것을 주장하였다. 이에 대해 노동계는 전임자 급여지급은 기업별노조를 강제하는 과정에서 단체협약을 통해 관행에 의해 장기간 형성되어 온 것이므로 노사 자율에 맡겨야 하며, 전임자 급여 지급을 법제화한다면, 사실상 노조의 존립이 위태로워지므로 법제화에 반대하였다. 결국 사용자의 급여 지급을 금지하고, 이를 부당노동행위로 취급하는 것으로 개정이 되고, 다만 노동조합의 취약한 재정 기반을 감안하여 2001년까지 일정한 유예 조항을 부칙 제6조에 덧붙였다. 이후 2001년과 2006년의 논의에서도 합의점을 못 찾고 다시 두 번에 걸친 유예기간을 거쳐 오늘에 와 있는 실정이다.

   프랑스, 독일, 영국, 미국 그리고 일본의 전임자제도가 우리의 전임자제도에 주는 시사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기업수준에서 노조 전임자에 대한 사용자의 임금지급을 금지하는 법은 사례 국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노조전임자에 대한 사용자의 임금 지급은 법적으로 명시적 규정도 없거니와 이를 금지하지도 않고 있었다. 

   둘째, 흔히들 한국의 전임자 제도를 ‘기업별노조 시스템에서 비롯된 제도’로써 인식하여, 우리처럼 기업별노조를 골간으로 하는 일본을 제외한다면 산별노조 중심의 국가들에서는 유사한 전임자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다. 본 조사에 따르면 한국식의 유급 풀타임 전임자가 존재하는 국가는 기업별노조 중심의 일본뿐만 아니라 산별 중심의 프랑스(완전전임자; permanent syndical), 영국(전임현장위원; full time shop steward), 미국(유급 풀타임 전임자), 에 존재하며, 독일에서는 종업원평의회에 유급 전임자가 법으로 명시되어 있다. 이들은 단체협약을 통해서 유급을 보장받고 있으며, 이들의 임금지급이 사용자의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하지도 않았다.

   셋째, 노조 전임자의 급여 지급 문제를 어떤 기준을 통해서 처리하느냐로 구분한다면, 사례 국가 모두 ‘노사 자율’에 맡기고 있다. 특히 프랑스는 단협에서 정한 노조 전임자에 대한 사용자의 임금 지급의 의무를 법으로써 명시하고 있기도 하다. 따라서 국제 사회의 관행은 노조 전임자의 급여를 노동조합 스스로가 부담하는 것이 원칙이며, 법률로 규정하지 않는 국가들은 사용자가 급여 지급을 하는 사례가 없기 때문이라는 주장은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다.

   오히려 국제 사회의 관행이라고 할 만한 기준은 국제노동기구(ILO)의 ‘기업내 노동자대표의 보호와 편의 관한 협약’ 제135호라고 해야 부합할 것이다. 이 협약에 따르면, 사업장 단위의 노동자 대표에 대하여 사용자가 필수적인 편의를 제공할 것과 부당한 차별취급을 하지 않을 것을 정하고 있다. 영국의 경우, 사실상 사용자가 사업장 내 노동조합 활동에 대해 법적으로는 편의를 제공할 의무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관례적으로 편의를 제공하고 있다는 사실은 바로 이러한 ILO 협약의 기준에 부합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국제노동기구는 노조전임자의 급여지급의 금지를 ‘입법 사항’으로 다루고 있는 한국의 노동법에 대해서 관련 규정을 폐지할 것을 권고한 바 있다.

국가	임금지급  금지법의 존재	임금 지급의 기준	유급 풀타임전임자
미국	무	단체협약	있음 (주로 자동차, 철강, 기계산업)
영국	무	단체협약	있음 (풀타임 현장위원으로 최근 증가추세임)
프랑스	무	단체협약 (단체협약에서 정한 노조 전임자에 대한 사용자의 임금 지급 의무 법으로 규정)	있음 (완전전임자)
독일	무	노사간 협약 및 사실적 관행(노조신임자) / 법으로 규정(종업원평의회 전임자)	노조신임자의 경우 확인불가능/종업원평의회 근로자대표위원
일본	무	노사 관행	있음 (공공부문 및 대기업에 ‘비공식전임’)

다음으로 현행 노동법에 대한 법률적 검토의 결론은 다음과 같다. 노동조합 전임자제도에 관한 논란을 판단할 때는 세 가지 점을 고려해야 한다.

   첫째는 노동조합 전임자 지위는 단체협약 또는 별도의 협정을 통해 노사관행으로 정착되면서 협약자치 또는 노사자치라는 노동법의 이념을 구현한다는 점이다. 노동조합과 전임자 관계를 고용계약과 유사한 관계로 설명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우선, 설사 사용자로부터 노동조합이 노무지휘권을 양도 받는다는 전제를 인정한다고 해도 노무지휘권의 존재만으로 고용관계가 성립한다고 할 수 있는지가 의문이다. 또한 노조전임관계를 비사업적 파견근로관계로 구성한다면 노조전임자는 사용자와 사이에서 성립한 근로계약 소정의 근로를 단지 노동조합에 제공하는 것뿐이기 때문에 소정의 임금 및 근로조건을 사용자로부터 지급받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따라서 노동조합과 전임자 관계를 고용계약 관계로 별도로 구성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또한 노동조합의 내부 자치와 관련해서도 노동조합과 전임자 관계를 별도로 구성할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파견과 유사한 관계로 설명하더라도 노동조합은 사용자와 합의 또는 단체협약에 따라서 사실상 노조 업무관련성이 있는 범위에서 전임자를 지휘·관리할 수 있는 권한이 있고 세부적으로 사용자의 동의나 간섭을 받지 않는다고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노동조합과 전임자 관계는 노동조합의 내부관계 내지 자치의 법리로 설명하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본다.

   두 번째는 노사자치에 의한 그 관행이 노동조합의 자주성을 침해하지 않는다는 것이 오랜 기간 동안 실증적·법리적으로 검증 받았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사안에 따라서 노동조합의 자주성이 침해될 위험이 있는지 여부를 평가하여 판단해야지 일률적으로 결정할 수 없다는 것이 옳은 것이다. 노조전임자에 대한 사용자의 임금지급이 노동조합의 자주성을 침해하기 때문에 금지되어야 한다는 견해에는 동의할 수 없다.

   세 번째는 노동조합 전임자에 관한 노사관행은 과거 노동법을 통한 국가 개입의 예상치 못한 결과라는 사실이다. 따라서 그 노사관행이 공익 질서에 반하거나 제3자의 이익을 침해한다는 논증도 없이 또 다시 국가가 개입하기 보다는 노조전임제도의 성립·존속·폐지에 관해서는 노사당사자 합의에 맡기고 법률에 의한 개입은 최소화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상의 연구결과를 종합하면, 우리의 ‘전임자 임금 지급’을 법으로 금지하고 있는 것은 “국제기준에 부합하지 않으며”, “현실성도 떨어지는” 것으로 여겨진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사용자 측에서는 “노조전임자에 대한 급여 지급 금지를 명시하지 않은 국가들의 경우에는 대개 노조가 노조전임자에 대한 급여 지급을 요구하지 않고 있으며, 사용자가 급여지급을 하는 사례가 없기 때문에 법률로 규정하지 않는 것”이라는 논리를 펴고 있다. 그러나 해외 사례에 대한 연구의 결과는 공히 ‘노조전임자에 대한 급여 지급 금지를 명시하지 않은 국가들의 경우에는 노조가 급여 지급을 요구하지 않는 게 아니라, 노사 관행이나 단체협약을 통해 급여를 받고 있으며, 이것이 노조의 자주성을 해친다고 생각한다기보다는 노조의 권리의 확장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 보다 사실에 부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