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대법원 앞에는 택시 회사 사장들이 ‘릴레이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이들이 들고 있는 대형 피켓에는 ‘2019년 대법원 최저임금 판결은 원천 무효’라는 구호가 적혀 있다. 지난달 21~22일은 경기도 파주시 거성운수의 조원복(61) 대표가, 이어 24일까지는 시흥시 양지교통의 김인철(67) 대표가 1인 시위를 했다. 27일에는 전국 택시연합회 소속 다른 회원들이 1인 시위를 이어받았다.

이들은 3년 전 대법원의 최저임금 관련 판결의 ‘후폭풍’으로 택시기사들로부터 ‘제대로 못 받은 임금을 달라’는 소송을 당했고 각각 수십억 원씩 물어내야 할 처지라고 한다. 일부는 그 돈을 주려면 회사를 팔아야 할 지경이라고 했다. 대법원 판결 내용이 뭐였기에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

2019년 4월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거성운수의 임금 지급 방식에 대해 “최저임금법 적용을 빠져나가려는 탈법행위라서 무효”라는 판결을 내렸다. 거성운수의 경우, 택시기사는 하루 운행으로 버는 수입 중 21만9000원을 떼 회사에 사납금으로 내고 있다. 회사는 이 사납금을 모아 기사 1명당 월 110만원을 ‘기본급’으로 준다. 택시기사의 소득은 사납금을 주고 남은 ‘초과수입’과 ‘기본급’으로 이뤄진다. 거성운수 기사들의 ‘초과수입’은 월 200만~400만원대라고 한다. 다른 택시회사의 임금 구조도 비슷하다.

2008년 최저임금법 개정으로 택시기사 수입 중 ‘기본급’에 대해 최저임금 기준을 적용하기 시작했다. 이 기준에 맞추려면 택시회사가 ‘기본급’을 올려줘야 했다. 그럴 형편이 안 됐던 거성운수는 사납금을 높여 ‘기본급’을 올리는 방안을 제안했다. 세금도 안 내는 ‘초과수입’을 선호하는 기사들은 이를 거부했다. 결국 양측은 노사 합의로 ‘소정근로시간’을 줄이기로 했다. ‘소정근로시간’은 노사 양측이 합의해 정하는 근로시간을 말하는데 2010년 거성운수의 노사는 ‘소정근로시간’을 월 209시간에서 115시간으로 낮췄다. 근로시간을 줄여 ‘기본급’을 최저임금 기준에 맞춘 것이다. 다른 택시 회사들도 이 방식을 택했다고 한다.

그런데 2012년 무렵 노동계에서 “최저임금법 위반”이라며 문제 삼기 시작했다. 택시기사들도 “그동안 못 받은 임금을 달라”며 소송에 나섰다. 거성운수 기사 6명도 1200만원을 돌려달라는 소송을 제기해 1심에서는 회사가, 2심에서는 기사들이 이겼다. 대법원은 2018년 이 사건을 전원합의체로 올렸다. 2019년 대법원은 9대4 의견으로 “실제 근로시간 변경 없이 장부상 근로시간만 줄이는 합의는 무효”라며 택시기사 승소를 확정했다. 노동 전문 변호사 출신 김선수 대법관도 다수 의견에 속했다. 김 대법관은 2013년 변호사로 최저임금 사건을 맡아 ‘단체협약으로 소정근로시간을 줄이는 것은 위법’이라는 서면을 법원에 냈었다.

대법원 판결 이후, 택시기사들이 패소했던 하급심 판결들이 뒤집혔고 추가 소송도 줄을 이었다. 택시 업계 관계자는 “전국적으로 최저임금 소송이 1350건, 청구 금액이 최소 1000억원”이라고 했다. 경기도 택시운송사업조합은 190개 업체 중 102개가 소송을 당했고 제소 금액이 총 390억원이다. 조원복 거성운수 대표는 “연 매출이 20억원인데 소송으로 30억원을 물어내야 할 판”이라며 “회사를 접어야 할 상황”이라고 했다.

택시업체 대표들은 대법원이 ‘법리’만을 앞세워 ‘현실’을 무시했다고 비판했다. 한 택시회사 대표는 “회사와 기사들이 한 발씩 양보해 합의했던 것인데 회사가 망할 지경”이라며 “이렇게 되면 누가 노사 합의로 기업을 운영하겠느냐”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