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는 겁니까?”

　8일 자정 무렵 서울 강남역 10번 출구 인근 택시 승차대기소에선 고성이 오갔다. 경기도 시흥에 사는 이진석(36)씨는 노란 쪼끼를 입은 서울시 공무원이 택시를 잡아준다고 해서 흔쾌히 줄을 섰다. 칼바람 속에서 20분 동안 기다렸지만 택시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서울시 공무원은 연신 시민들에게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말했다. 20분 후 이씨는 “혼자 택시를 탔으면 벌써 집에 도착했을 것”이라며 화를 내며 자리를 떴다.

　서울시가 ‘택시승차지원단’을 운영하기 시작한 첫날 풍경이었다. 서울시는 ‘추운 밤거리에서 시민들이 승차거부를 당하며 오래 기다리는 것을 막겠다’며 오후 10시부터 다음날 오전 1시까지 강남역에서 택시승차지원단을 운영한다고 밝혔다. 승차지원단 20여 명이 7일 오후 8시부터 나와 3m 높이의 노란 막대풍선을 설치하고 입간판을 세우는 등 부산을 떨었다. 그러나 정작 시민들 사이에선 “오히려 택시를 더 잡기 힘들어진 것 같다”는 볼멘소리가 나왔다.

　이날 중앙일보가 현장에서 지켜본 결과 손님이 적은 오후 10~11시 승차지원단은 무난히 운영됐다. 문제는 손님이 붐비는 오후 11시부터 자정까지였다. 승차지원단이 택시를 불러도 감감무소식이었다. 기다리다 지친 일부 시민은 위험을 무릅쓰고 줄을 벗어나 도로로 나가 스스로 택시를 잡기도 했다. 김세윤(27)씨는 “여기서 괜히 20여 분을 기다렸다. 교보문고 쪽에서 기다렸으면 금방 택시를 잡을 수 있었다”고 짜증을 내며 자리를 떴다.

　시민들이 화를 내자 승차지원단은 황급히 무전기로 택시를 요청했다. 하지만 아무리 무전기에 콜을 불러도 승차장 쪽으로 오는 택시는 없었다. 승차지원제에 참여한 4개 콜택시업체에 등록된 택시는 1만3000여 대가 넘지만 강남으로 오겠다는 택시는 없었다. 승차지원단 관계자는 “지금 강남으로 올 수 있는 택시는 한 대뿐”이라고 말했다.

　이런 와중에도 한쪽에서는 승차지원단이 승차장으로 다가오는 경기도 택시들을 내쫓고 있었다. 경기도 소속 택시들이 승객을 골라서 태운다는 명목이었다. 경기도가 목적지인 시민들은 “승차지원단인지 승차방해단인지 모르겠다”며 고개를 저었다.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질까. 택시기사들이 승차지원단 제도에 대해 모르기 때문이다. 콜택시 회사 동부엔콜의 최지수 이사는 “콜택시 기사에게 이 같은 방침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아 아직까지 이 제도를 잘 모르는 것 같다”고 말했다. 또 서울시가 승차지원 콜에 응한 택시에 주겠다는 서울지역 1000원, 지방 2000원의 추가 인센티브는 황금시간대 콜택시를 붙잡기엔 역부족이었다. 개인택시 기사 서경석(46)씨는 “손님들이 많은 시간대라 승차거부를 단속하는 강남역으로 굳이 들어올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송민지(18·학생)양은 “주말에는 손님들의 택시 새치기가 많아 이 제도가 필요할 수 있지만, 평일엔 필요 없는 것 같다”며 “차라리 주말에만 운영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8일 오전 1시 승차지원단의 활동이 끝날 무렵에야 강남대로에 택시가 가득 찼다. 노란 풍선의 불은 꺼지고 택시승차지원단은 주섬주섬 짐을 챙겼다. 서울시가 참여 택시기사에게 선물로 주려고 준비한 수건 80여 장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정원엽·김영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