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노동자의 희망-전국민주택시노동조합

택시뉴스

ㆍ작성자	민주택시
ㆍ작성일	2010/09/25

ㆍ조회: 4532

택시기사의 추석 한가위

택시기사 “푸근한 명절 분위기 옛말”

2010년 09월 20일 (월) 10:51:49

백하나 기자

bhainj@newscj.com

▲ 서울역에 대기 중인 택시 ⓒ천지일보(뉴스천지)

IMF 이후 명절다운 명절 보내본 적 없어… 힘들어도 ‘나는 한 집안의 가장’

[천지일보=백하나 기자] “추석이요? 명절 때 집에 안 내려간 지 한 3~4년은 된 것 같습니다.”

14년째 운전대를 잡은 택시기사 김종갑(50) 씨는 IMF 이후 명절다운 명절을 보내본 적이 없다고 했다. 김 씨는 “예전에는 고향에 내려가면 친구들도 만나 걸쭉하게 술도 마시고 윷놀이를 하거나 차례를 지내면서 명절 분위기를 내곤 했는데 3~4년 전부터 고향에 안 내려가서 집에서 TV만 본다”고 전했다.

그 이유에 대해 저마다 먹고살기 바빠 고향에 못 내려간 지 오래돼서 지인들을 만나도 서먹서먹해졌기 때문이라고 김 씨는 말했다.

일에 묻혀 인정을 잃어가는 건 비단 자신과 친구들만이 아니었다.

◆ 인사가 어색한 손님

10년 전만 해도 명절 분위기가 이렇진 않았다. “옛날에는 요즘처럼 차가 많지 않아 사람들이 택시를 많이 이용했어요. 명절이 되면 마음도 푸근해지고 하니까 거스름돈도 더 주시고, 차 안에서 ‘어디 가냐’ 오순도순 대화도 오고 갔죠···.”

다른 택시기사 최종호(50대, 운전경력 20년) 씨는 10년 전 명절을 푸근하게 기억한다.

최 씨는 하지만 “요즘 사회가 바빠지다 보니 손님에게 말을 시키면 무시하거나 귀찮아하고 심지어 이상하게 보는 경우도 있다”며 “하루에 내뱉는 말이 ‘어서 오세요’ ‘안녕히 가세요’가 전부”라고 헛웃음을 지었다.

그는 이어 “요즘 사람들은 10원 하나라도 더 챙기려 한다. 그게 아까워서가 아니라 예전보다 사람들은 잘 사는데 마음의 여유는 더 없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35년 경력의 베테랑 모범 택시기사 정명식(67) 씨는 달라진 명절 분위기를 이렇게 기억한다.

요즘처럼 24시간 편의점도 없고 서울 시내도 덜 복잡하던 시절에 대부분의 상점은 연휴에 문을 닫았다. 그래서 점심 한 번 먹으려면 도시락을 꼭 싸와야 했다.

정 씨는 “한 번은 도시락도 없고 문 연 곳도 없어 서울역에서 30분 거리의 미아리(자신의 집)까지 가서 밥을 먹고 나와야 했다”며 “그렇게 밥 먹으러 가면 본전도 못 찾지만 손님과 이런 저런 이야기 주고받는 것도 재미있고 벌이도 잘 돼 일이 신났다”고 회상했다.

명절의 훈훈함은 옛날 이야기, 바쁜 삶으로 온정ㆍ여유 사라져
생계 위해 하루 12시간 이상 근무, 가족 얼굴 제대로 볼 시간 없어

◆ 우리도 ‘서민’


▲ 매일 12시간 넘게 운전을 하면서도 버틸 수 있는 건 가족의 힘이다. 그들은 가족이 있어 일할 힘이 난다고 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그렇게 신나게 달리던 운전 인생 끝에 남은 것은 요통·위궤양·소화불량 등의 만성질환. 정 씨는 “예전 차는 요즘처럼 성능이 좋지 않아 브레이크를 밟을 때도 무릎에 힘이 많이 들어갔다. 그러다 보니 20여 년이 지난 지금 연골이 다 닳아서 5년 전 수술을 받았다”고 전했다.

그는 “요즘엔 나이가 들어 8시간밖에 일하지 못 한다”며 “기사들 중 장시간 운전과 불규칙한 생활 때문에 몸이 성한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육체적인 힘겨움과 함께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직업도 택시기사다. 괜히 화풀이를 하며 반말하는 손님, 시비를 거는 손님 등과 같은 불청객이 운전을 힘들게 하는 요인 중 하나라고 전했다.

택시기사들이 특히 가장 꺼리는 손님은 ‘취객’이다. 나상식(62, 운전경력 18년) 씨는 “시간이 중요한 택시기사에겐 취한 손님 태우기가 가장 힘들다. 손님이 인사불성이 돼 집이 어딘지도 모르면 가족을 찾아 일일이 기다려야 하고, 때로는 파출소에 데려다 드리니 이런 손님을 만나면 돈과 시간이 많이 낭비된다”고 말했다.

택시기사 김희철(53, 운전경력 28년) 씨는 “요즘에는 연료비가 많이 들어 월급의 반은 연료비로 나간다. 하루에 10만 원을 번다고 치면 하루 일당이 5만 원 정도 되는 셈이니 20일 일하고 받는 돈이 100만 원 수준”이라고 호소했다.

김종갑 씨는 “요즘은 세상이 흉흉해져서 택시 강도가 가장 걱정된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얼마 전에 험상궂은 사람이 택시에 탄 후 ‘골목으로 들어가자’길래 섬뜩했던 기억이 있다”고 했다.

◆ 명절 잃은 가장
10년 전 1ℓ 연료비가 190원 하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5배 오른 1000원이다. 아이들 교육비는 자꾸 늘어가고 서울 살면서 집세 내기도 빠듯한데 자가용이 늘어 손님이 없다. 더욱이 취객을 태우는 대리운전까지 생겼다.

요즘은 경기지역 택시들도 서울로 올라오다 보니 경쟁이 더욱 치열하다. 이제는 자리싸움 때문에 조직폭력배까지 동원되고 ‘이 손님 태우지 마라’며 으르렁대는 실정이라고 택시기사들은 말한다. 택시기사들이 이렇게 힘든 상황에서도 운전을 쉽게 그만 둘 수 없는 이유는 가족 때문이다.

23살부터 택시를 몰았다는 박춘수(45) 씨는 “택시운전을 하면서 장가를 갔고, 아이 둘을 얻었다. 힘들어도 가족을 생각하면서 일을 한다”고 전했다.

대부분의 기사들은 이 일밖에 잘하는 게 없고, 당장에 그만두면 가족이 힘들어지기 때문에 묵묵히 일하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번 추석 연휴는 길게는 18~26일까지로 무려 9일이나 된다. 그러나 만나본 택시기사들 중 절반은 연휴를 즐기지 못한 채 일하러 나오겠다고 했다.

택시기사 이동열(50, 운전경력 20년) 씨는 “돈이 없어 집에 못 내려간 지 한 3~4년 됐다. 일하면 추가수당이 나오기 때문에 집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 한 푼이라도 더 벌기 위해 나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명식 씨는 “집안의 가장이다 보니 차례는 지내려고 한다. 고향에 내려가지 못하고 서울에서 차례를 지내고 일을 하러 나올 생각”이라고 전했다.

택시기사들은 보통 오후 12~1시에 출근해 새벽 2시쯤 퇴근한다고 한다. 벌이가 안 좋으면 새벽 4시도 훌쩍 넘기 일쑤다. 이들은 좀처럼 불황이 수그러들지 않는 상황에서 이번 연휴도 포기해야 할 것 같다며, 가족을 돌아볼 여유를 갖지 못해 마음이 아프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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