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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구 열사
이석구 |
1980년 조흥택시(주) 입사 1985년 노동조합 결성하였으나 와해, 1987년 8월 31일노동조합 재결성, 위원장에 선출 1987년 9월 2일 오후 8시경 회사측의 노조 탄압중지 요구에 대해 사장의 성의있는 답변이 없자 이에 격분하여 신나를 끼얹고 분신 1987년 9월 19일 강남 시립병원에서 치료 도중 운명
<동지를 생각하며> 조흥택시 직무대리의 양심선언문 양심 선언서 본인은 1982년 4월 8일부터 조흥택시(주)에 계속 근무하면서 1986년 10월부터 상조회 총무직을 역임하였으며 현재 부위원장으로서 위원장 직무대리를 맡고 있습니다. 우리 회사는 족벌기업체로서 회장님(부친), 사장님(큰아들), 전무님(작은아들), 감사(큰사위)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본인은 고인이 된 이석구씨가 4일이 지나도록 사장님께서 모든 책임의식을 느끼지 않고 도덕적으로만 책임의 한계를 계속 강조 하고 있어서 끝내 울분을 참지 못하고 고인의 뜻을 받들어 노동조합의 활성화로 고인이 편히 잠들 수 있도록 양심선언을 하는 바 입니다. 지난 1987년 9월 2일 17시경 회사내 천우자동차공업사 2층 사장실에 전무님으로 하여금 동료 허두진, 함영철, 양대경, 소진권, 이태우, 김광인 등 본인과 함께 좌담이 시작되었고 이때 신현구는 술에 취해 시트에서 잠자고 있었습니다. 전무님께서는 노조 설립의 개인위주의 빈약성을 노려 상조회장의 선출을 빨리하여 상조회를 활성화하면 회사에서 지원해 주겠 다는 말씀과 함께 동료들의 협조를 얻을 수 있는 호소문을 내 보이며 이것을 본인이 스스로 써서 다음날 비조합원 전원에게 돌려 주며 싸인을 받도록 유도하였습니다. 그러나 본인은 양심이 꺼려 스스로 쓰지 못하고 근처 타자 복사가게에서 타자기로 2장으로 요약하여 이것을 회사 오과장님으로 하여금 100부를 복사하도록 부탁드린 뒤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그날 20시경 고 이석구씨의 분신사건이 발생하고 말았습니다. 다음날 7시쯤 회사에 갔을 때 오과장님이 "전무님의 원고지 를 어디에 두었냐"고 묻길래 "쓰레기통에 버렸다"고 하였습니다. 그 후로 본인은 같이 참석한 동료들로부터 배신감이 두려워 침묵 을 지키다 이제서야 이 사실을 솔직히 고백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야 말로 간접 노조탄압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사장님께서는 반성의 기회가 되시어 고인이 편히 잠들 수 있도록 하여 주시옵소서. 1987년 9월 23일 직무대리 주정삼 <열사의 삶과 죽음> 이석구 동지는 조흥택시(주)에서 85년 조합을 결성하였으나 회사측의 방 해로 와해되자 이에 굴하지 않고 87년, 35명의 기사들과 함께 민주노조 결성에 성공하여 위원장으로 선출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회사측은 구사대를 통한 노조탄압에 맞서 사장에게 면담을 요구하였으나 묵살당하자 87년 9월 2일 택시위에 올라가 "노 조탄압 중지하라"고 외친후 분신, 3도의 중화상을 입고 강남시립병원 중환자실에서 치료 도중, 19일 새벽 3시 11분 경에 부인과 5살과 10개월이 된 어린 두 딸을 남겨두고 끝내 운명하였다. 그러나 회사측 은 "너희들끼리 일어난 일이다. 도의적인 책임만 지겠다"고 발뺌을 하였고, 이에 분노한 유가족과 노조는 열사의 뜻이 관철될 때까지 무기한 장례를 연기해오다 10월1일에야 장례식을 치를 수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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