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노동자의 희망-전국민주택시노동조합

택시뉴스

ㆍ작성자	민주택시
ㆍ작성일	2010/09/06

ㆍ조회: 2446

술 취한 승객, 담배 못 피우게 한 죄
택시기사 이선주의 세상사는 이야기 - 술 취한 승객, 담배 못 피우게 한 죄

얼마 전, 서울시에서 ‘택시운전자가 택시에서 담배를 피우면 12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한다’는 내용이 언론에 보도된 것을 봤습니다. 택시에 탄 승객이 담배냄새가 난다고 신고하기만 해도, 택시운전사가 담배를 피운 것으로 간주해 과징금을 부과할 수도 있다고 하더군요.

현행법으로도 택시에서는 승객과 운전자 모두 금연입니다. 지난해 초까지만 해도 대중교통 차량은 무조건 금연이지만, 택시만큼은 예외였습니다. 택시 운전자는 운행 중 담배를 피울수 없지만, 승객이 동의해주면 피울 수 있는 어정쩡한 운송약관이 있었기 때문이죠. 승객도 운전자가 동의하면 담배를 피울수 있도록 했습니다. 때문에 비교적 고급 서비스라고 할 수 있는 택시는 어느 정도 서비스에 대한 자율성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난해 6월부터는 택시 승객도 운전자의 간접흡연 방지를 위해 무조건 금연하도록 법이 바뀌었습니다. 그래도 택시에서는 흡연이 종종 벌어집니다. 아직 흡연자가 많기 때문이지요.

택시 승객이 운전자에게 넌지시 묻습니다. “기사님은 담배 안 피우시나봐요?” 제가 “예, 끊었습니다” 혹은 “안 태웁니다”하면 승객은 그냥 조용히 갑니다. 만약에 “아뇨, 담배를 끊긴 끊어야겠는데 그게 잘 안 됩니다”하고 답하면, 승객이 기다렸다는 듯 말합니다. “저도 끊긴 끊어야 되는데 일단 우리 서로 한 대씩 태웁시다.” 이렇게 운전자와 승객이 함께 담배를 피우기도 합니다.

야간 근무 때 이런 일이 잦습니다. 흡연자들의 특징 중 하나가 술 한 잔 들어가면 흡연욕구를 잘 못 참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 잔 하고 집에 가는 승객들이 종종 택시에서 양해를 구합니다. 운전자 입장에서는 이 때의 대응이 무척 중요합니다. 무조건 “금연입니다”라고 했다가는 대부분 승객이 삐칩니다. 그래서 같은 말이라도 좀 부드럽게 표현해 “차가 잘 빠지는 시간이라 10여분 안에 도착하니까 조금만 참아주시죠”하면서 부탁조로 거절을 합니다.

그런데 차도 막히고, 승객은 재차 담배를 피우겠다고 양해를 구해오고, 갈 길은 아직 15분 이상이나 남아있는 상황에서는 곤란한 일이 많이 생깁니다. 술 한 잔 하신 흡연자를 15분 이상 담배 못 피우게 붙잡아두는게 보통 힘든게 아닙니다. 담배 못 피우게 한 죄(?)로 승객의 트집잡기가 시작되기도 합니다. “왜 이리 돌아가요? 저쪽으로 가면 벌써 목적지 다 갔을텐데. 아저씨가 길을 잘 몰라서 이리로 돌아가는거 아니에요?” “아, 소변도 마렵고한데 미치겠다.” “아저씨, 여기까지 얼마 나왔어요? 뭐요? 1만2000원이요? 그런데 아직 여기까지밖에 못 왔어요?” 등 담배 못 태우게 한 죄로 온갖 소리를 다 듣게 됩니다.

이럴 바에는 차라리 담배연기를 맡는 것이 낫겠다 싶어 승객에게 담배를 피우도록 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담배 냄새를 싫어하는 승객이 뒤이어 탔을 경우, 택시 안에 진동하는 담배냄새 때문에 괴로워하기도 합니다. 어떤 승객은 15분 거리에 담배를 4대 피운 경우도 있었습니다. 이런 승객을 만나면 그날 근무에 상당한 지장이 있습니다. 담배냄새 때문에 머리가 아파서 더 이상 일을 못 할 지경이 되기도 합니다.

담배 냄새가 얼마나 지독한지 모두들 아실 겁니다. 언젠가 마지막 손님이 담배를 피워 집에 가면서 환기를 하고 비번인 다음날 택시를 하루종일 세워 뒀습니다. 그 다음날 택시문을 열었는데 여전히 담배 냄새가 확 느껴지더군요. 그래서 택시를 세워 놓을 때는 창문을 항상 1cm 정도 열어 놓을 때도 있습니다.

각설하고, 다시 120만원 이야기로 돌아오겠습니다. 서울시는 어째서 택시운전자에게 120만원의 과징금을 물리겠다는 발상을 했을까요. 담당자 입장에서는 ‘택시에서 담배냄새 난다고 시민들로부터 민원은 들어오고, 현장 지도는 어렵고 하니 아예 과징금이나 왕창 물리자. 그러면 운전자가 택시에서 담배를 안 피우는 것은 물론 술 취한 승객이 담배를 피우려고 할 때도 과징금을 이유로 강력히 저지하지 않겠느냐’는 기대를 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러한 방법은 우리 택시운전자를 지나치게 코너에 몰아넣는 방법입니다. 동료들 중에는 아침 6시부터 저녁 6시까지 12시간 꼬박 근무하고 150만원도 못 버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과징금 120만원 운운한 것은 지난번에도 표현했듯이 서민들의 삶과 정책을 펴는 분들의 소통이, 아니 현장에 대한 정보가 너무 없다는 증거입니다.

현장의 반대가 워낙 심하다 보니 일단 이 문제는 잠수를 탔지만, 효과는 좀 있었습니다. 10일에 한 번 정도 택시에서 담배를 태우는 분들이 계셨는데, 이 발표 이후에는 담배 태워도 되겠냐고 문의하는 사람이 확실히 줄었습니다. ㅋㅋ 아예 택시를 타기 전에 담배를 다 피우고 여유 있게 택시를 타는 것 같습니다. 전에 택시 잡기가 쉽지 않던 시절에는 담뱃불을 붙이고 한 모금 빨았을 때 택시가 오면 얼른 담배를 끄고 택시를 탔습니다. 지금은 택시를 언제(금요일 밤 일부지역 예외)나 쉽게 탈 수 있기 때문에 다소 여유가 생긴 것이 아닌가 합니다. 아직도 과거 택시잡기가 어려웠던 때의 습관이 몸에 배어있는 몇몇 승객분들은 담배에 불을 붙이다가도 빈 택시가 오면 바로 담뱃불을 끄기도 합니다.

오늘 담배 이야기가 좀 길어지기는 하지만, 담배 때문에 과징금 30만원을 낸 이야기를 짧게 올리며 마무리 짓겠습니다.

15여년 전, 출근시간은 합승이 좀 있었습니다. 그 때는 제가 법인택시를 운행하고 있었는데, 망우사거리에서 건대입구 전철역에 가는 30대 초반의 승객이 앞자리에 탔습니다. 7호선이 개통되기 전이었기 때문에 아침 출근시간 이 방향은 합승 확률이 좀 높은 편이었습니다. 저는 손님에게 미리 합승에 대해 양해(이 시기에는 거의 통보였지만…)를 구해 놓았습니다.
용마산길을 따라 건대입구 방향으로 가다가, 중곡동에서 40대 초반 남자손님이 합승을 했습니다. 이 손님이 어린이 대공원에 이르를 즈음 저나 먼저 탄 손님에게 아무런 양해도 없이 그냥 담배를 피웁니다. 먼저 탄 승객은 짜증이 났고, 결국 서울시에 합승 신고를 했습니다. 서울시에서 신고한 사람의 이름은 보여주지 않지만 신고 내용을 확인하니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합승하라고 기사님께 양해는 해줬는데, 나중에 합승한 사람이 택시에서 담배를 태웠기에 기분 나빠 합승으로 신고합니다.” 그래서 전 합승 과징금 30만원을 낸 적이 있습니다. 오늘 120만원 이야기를 하다 보니 그 생각이 나는군요. 그 때 신고하신 분 혹시 이 글 보시려나?

추신 : 참고로 전 담배 안 태웁니다. 초딩 4학년 때 결정했습니다. ‘도시 가서 담배배운 것 후회한다’던 동네 선배들이 우리들한테는 절대로 담배를 배우지 말라고 하면서도 왜 번번이 담배를 피우는지 이해가 안 되더군요. ‘도대체 이것이 무엇이길래’하는 생각에 화랑담배 한 가치를 들고 논두렁으로 갔습니다. 그 곳에서 담배를 피워본 후 결정했고, 오늘까지 그 결정을 지키고 있습니다.

◆ 이선주는 누구?

이선주(47)씨는 23년 경력의 택시기사다. 2008년 5월부터 차 안에 소형 카메라와 무선 인터넷 장비를 설치해 택시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동영상 사이트인 ‘아프리카(afreeca.com/eqtaxi)’에 ‘감성택시’란 이름으로 실시간 생방송하고 있다. 택시 뒷좌석에는 무선 인터넷이 가능한 카피씨(Car-PC)를 설치해 무료로 승객들이 사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조선일보를 비롯해 미 ABC 방송, YTN, SBS 등에 소개된 바 있다. 1999년에는 교통체계에 대한 정책제안 등의 공로로 정부가 선정한 신지식인으로 선정됐다. ‘만만한게 택시운전이라고요?(1998)’ ‘종로에서 뺨맞고 한강에서 배꼽잡고(1999)’ 등 두 권의 책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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